본문 바로가기

정의가 해법이다/환경문제, 정의가 해법이다

반핵운동은 고준위핵폐기물 공론화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환경과 미래 60호, 2007년 여름

 

 

❙특집❙사용후 핵연료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반핵운동은 고준위핵폐기물 공론화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이 수 경(환경과 공해연구회 회장)

 

 

 

1. 고준위핵폐기물 공론화에 대한 반핵운동의 고민

우리나라는 그간 세차례에 걸친 핵폐기장반대운동으로 핵폐기물은 쌓여가는데도 핵폐기물처리장을 아직도 마련하지 못하였다(경주 중저준위폐기장 제외).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비중을 지향하고, 이로 인해 핵폐기물의 발생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쌓여가는 데(표 1) 폐기물을 처리할 곳을 마련하지 못한 정부와 핵산업계로서는 애가 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표 1. 우리나라 발전용원자로 사용후핵연료의 저장현황과 포화예상연도

발전소

저장방식

저장용량

(MTU)

저장량

(MTU)

예상포화년도

현용량

저장능력 확충

고리

습식

1,737

1,475

2008

2016

영광

습식

1,696

1,249

2008

2021

울진

습식

1,642

949

2008

2018

원성

습식/건식

4,960

4,287

2006

2017

역으로 성장과 개발이 최고의 미덕인 우리사회에서 핵산업을 반대하는 반핵운동에게는 국민 누구도 반기지 않는 핵폐기물이야말로 핵산업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비빌 언덕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간 핵폐기장반대운동 과정에서 반핵운동이 핵산업의 비밀주의와 관료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동원한 공론화 전략을 정부가 들고나옴으로써 반핵운동은 이제 좋든 싫든 고준위핵폐기물공론화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반핵운동도 핵발전에 대한 입장과는 달리 이미 나온 핵폐기물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어야 하는 것까지를 부정하지는 않기 때문에 핵폐기물 처분장 설치를 무조건 반대하고 있지는 않다. 반핵운동은 핵폐기장 설치문제를 단지, 세대간 형평성이나 환경적으로만 고려해서 설치에 찬반을 논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보지 않고, 지역적 갈등, 환경적 안전성,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핵발전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고려하는 틀로써 핵폐기물 처분 공론화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실적으로도 반핵운동이 먼저 제기한 공론화를 반대하는 것은 명분도 서지 않는 일일뿐 아니라 경주에서 보듯이 주민의 힘으로 핵산업을 막아내는 일도 이미 한계를 드러낸 상황에서 고준위핵폐기물 공론화가 갖는 사회적, 반핵운동적 전략을 찾아내야할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2. 공론화란 무엇인가?

공론화 경험이 일천한 우리나라에서는 공론화가 무엇이고 공론화를 통해 사회가 무엇을 얻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다 다르다. 따라서 먼저, 공론화의 의미를 살펴보자.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2007년 『사용후핵연료의 관리체계 및 공론화방안 연구(최종보고서, 2007.2.)』에서 ‘공론화란 특정한 공공정책 사안이 초래하는(혹은 초래할)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해결책의 모색과정에 이해당사자들과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민주적으로 수렴함으로써 정책과정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고자 하는 일련의 절차를 의미한다. 따라서 공론화를 통한 정책결정은 기존의 전문가와 관료 중심의 정책결정에서 탈피하여 정책결정과정을 이해당사자들과 시민사회에 폭넓게 개방함으로써 정책결정의 민주화를 이루어 궁극적으로는 정책의 사회적수용성을 높이는 효과를 달성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공론화란 1)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2) 정책결정과정을 공개하고 이해당사자를 포함한 사회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3) 정책을 결정하여 정책의 집행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에 나서게 된 것은 1) 핵산업계/정부 와 지역주민/반핵단체가 양축을 이뤄 갈등해 온 핵폐기물처분장에 대해 2) 정책결정과정에 반핵단체를 포함하여 시민사회단체를 참여시켜 3) 고준위핵폐기물 처분장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2)국가에너지위원회에 민간추천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 대표를 일부 참여시켜 사용후핵연료의 관리방안과 입지를 선정하기 위한 공론화의 틀을 짜겠다는 계획이다.(표2 참조)

이러한 정부의 공론화 방침은 선진외국의 사례와 경주 중저준위핵폐기물 처분장 입지선정의 경험을 근거로 공론화를 통해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의 입지도 마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인 듯하다.

경주 중저준위핵폐기물처분장 입지선정의 경우처럼 주민투표와 같은 일부 공론화의 한 기법을 동원해 고준위핵폐기물처분장의 입지도 선정할 수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고준위핵폐기물처분장의 입지선정 과정도, 사회적 갈등을 사회적의제로 만들어 민주적으로 갈등의 해결방법을 찾고 이를 정책의 방향으로 정하는 공론화를 요식행위로만 삼는다면 못한다면 경주에서처럼 공론화는 단지 국익이라는 명분을 빌어 다수가 소수에게 부당함을 강요하는 폭력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공론화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의견이 다수인지를 가리는 과정이 아니라, 행정과 전문가에 의해 독식되어, 갈등을 빚어 온 사안에 대해 이해당사자 뿐 아니라 사회전체가 공정한 해결방법을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독일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고, 우리 시민사회는 고준위핵폐기물 입지선정의 공론화를 통해, 우리나라의 참여적 민주제도를 어떻게 확대시켜 나갈 것인지, 반핵운동은 이 과정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에 대한 인식과 참여를 어떻게 높여나가야 할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3. 독일의 핵폐기물 영구처분장 부지 선정방식을 위한 위원회(이하 아켄트)의 공론화 사례의 교훈

1998년 핵발전 포기를 공약으로 내건 사민당 녹색당 연립정권이 들어서면서 핵폐기장 설립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오던 독일에서는 핵폐기장 건설과정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1999년 연방환경부는 아켄트를 설립하고 2000년에 이루어진 1) 핵발전 포기에 관한 최종합의에 따라 기존에 추진하던 골레벤에 대한 부지적합성 조사를 중단하고 2) 2005년부터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금지하고 3) 핵폐기물을 발전소 부지에 수십년간 보관하면서 핵폐기장 건설을 장기간에 걸쳐 검토하여 건설하겠다고 결정하였다. 독일의 핵폐기물 처분장 입지선정은 이렇게 핵발전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 독일정부가 먼저 입장을 정리한 후에 시작되었다.

아켄트가 대표적인 공론화 성공사례가 된 것은 아켄트가 공론화를 통해 견지할 주민참여와 투명성의 원칙을 마련하고 입지선정 과정에서 전문가와 행정에 의해 독식되어 온 핵발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민주적 절차를 만든 것에서만 찾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핵폐기장 설치문제는 지역주민과 반핵운동, 정부와 핵산업계의 치열한 공방으로 지역사회가 분열하고 반목하였으며 정부도 핵폐기장 설치에 번번이 실패하고 또한 이의 설치과정에서 국가적 재원을 낭비하였다. 정부가 성공을 자랑하는 경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특별지원금 3천억, 지원사업 3조 2천억원에 이르는 국가적 자원을 쏟아붓고, 주민투표라는 공론화 방식을 도입했음에도 오히려 선거과정에서는 유치지역간 갈등, 선정후에는 경주지역 내부 갈등으로 공론화의 의미를 무색케하는 일이 아직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경주 중저준위 핵폐기장은 형식만 빌어온 공론화를 통해 입지는 선정되었지만 사회적 갈등을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합의하고 해결하기 위한 공론화 본래의 취지는 전혀 살려내지 못하고 오히려 갈등만 증폭시킨 안하느니만 못한 공론화의 나쁜 본보기로 고준위핵폐기물 공론화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

공론화를 통해 고준위핵폐기물처분장 입지를 마련하기 위해서 정부가 먼저 숙고해야할 것은 어떤 절차로 입지선정 공론화를 진행했느냐가 아니라 공론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수십년간 쌓아 온 불신을 인정하고 공론화를 통해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환경을 만들어내는 일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공적이라고 평가를 받는 아켄트가 시작될 수 있었던 배경, 즉, 국가의 발전계획 특히 핵발전계획,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 문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기구의 운영과 구성을 공론화하여 의지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독일의 아켄트를 시작하기 위한 공론화를 먼저 시작해야 하는 단계인 셈이다.

4.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사용후핵연료공론화의 문제점

2006년 출범한 국가에너지위원회는 산하에 에너지 정책, 기술기반, 자원개발, 갈등관리전문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이중 갈등관리위원회에서는 에너지에 관련된 사회적 갈등의 예방 및 해소에 관한 사항(에너지기본법 제10조 6항)에 대해 국가에너지위원회 상정 안건에 대한 검토 및 위임 안건을 조사 ․ 연구한다.

2007년 갈등관리위원회는 중장기 원자력산업의 정책방행 수립과 사용후핵연료 중장기 관리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아래 계획대로라면 정부는 국가에너지위원회를 통해 핵발전 비중은 9월까지 결정하고 재처리를 포함한 사용후핵연료관리는 공론화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다. 또한 사용후핵연료관리 공론화도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 및 재처리를 포함한 최종관리방안에 대해 2007년 공론화 세부 추진방안을 마련하여 2008년에는 대중 및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독일에서 선거를 통해 핵발전과 재처리에 대한 공약을 검증받았던 과정을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에너지위원회를 통해 결정하고 다음 수순인 입지선정에 대한 공론화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표 2. 갈등관리 전문위원회 향후 추진 일정(안)

월별

일정

(잠정)

주요활동

비고

3월

~

4월

○ 원전의 적정비중 초안 작성(에경연, 산자부)

○ 원전의 적정비중 실무위원회(T/F)회의

- 원전의 적정비중 초안에 대한 실무검토

* T/F 구성운영(안)은 갈등관리전문위(2차) 서면의결 추진

*T/F는 자율적으로 운영(수시개최)

5월

5.22

(화)

갈등관리전문위원회 개최(3차)

- 원전의 적정비중 초안 검토

-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추진방향 확정 및 실무위원회(T/F) 구성 ․ 운영

○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실무위원회(T/F) 회의

- 공론화 해외사례 검토

*에너지정책전문위와 연석회의

6월

○ 원전의 적정비중 실무위원회(T/F) 회의

- 주요 쟁점사항별 상세검토(수요전망)

○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실무위원회(T/F) 회의

-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 및 최종 관리방안 논의 (전문가 의견 청취)

7월

○ 원전의 적정비중 실무위원회(T/F) 회의

- 주요 쟁점사항별 상세검토(원전의 경쟁력 평가)

○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실무위원회(T/F) 회의

-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 및 최종 관리방안 논의

8월

○ 원전의 적정비중 실무위원회(T/F) 회의

- 주요 쟁점사항별 상세검토(전원구성 및 원전비중)

○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실무위원회(T/F) 회의

-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 및 최종 관리방안 논의(계속)

9월

9.11

(화)

갈등관리전문위원회

- 원전 적정비중에 대한 T/F 검토 결과

- 사용후 공론화 T/F 논의결과 검토

*에너지정책전문위와 연석회의

10월

미정

국가에너지위원회 개최(3차)

- 국가에너지기본계획(원전의 적정비중 포함)

○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실무위원회(T/F) 회의

-해외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참여 전문가와의 간담회(예정)

11월

○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실무위원회(T/F) 회의

-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 및 최종 관리방안 논의(계속)

- 대중 및 이해관계자 의견수렴방안 논의

12월

12.18

(화)

갈등관리전문위원회 개최(5차)

- ‘08년 운영방안 검토

 

국가에너지위원회는 대통령을 위원장, 국무총리를 부위원장으로 하고, 산자 ․ 재경 ․ 과기 ․ 외통 ․ 환경 ․ 건교 ․ 예산부 장관과 에너지전문가 11인, 시민단체 추천 5인을 포함하는 에너지정책의 최고 의사 심의기구이다. 위원회 소관사무를 처리하는 간사위원 2인은 산자부장관과, 산자부장관과 환경부장관이 협의하여 추천한자 중에서 대통령이 지명한다.(에너지기본법 시행령 2조 5항) 또한, 전문위원회 위원 구성에 대한 별도의 규정은 없으며 전문위원회의 사무를 처리하기 위한 간사위원은 산업자원부 소속 공무원 중 산자부장관이 지명하도록(에너지기본법 시행령 4조 9항) 하고 있어 국가에너지위원회 및 전문위원회에서도 산업자원부가 실제적인 실무를 맡아보도록 규정되어있다.

그러나 산업자원부는 그동안 핵발전비중 및 핵폐기장 설치를 둘러싸고 지역주민 및 반핵운동과 갈등을 일으킨 한 주역으로써 산자부가 주관하는 공론화를 시민사회가 수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또한 9월까지 결론을 내리겠다는 핵발전 비중은 그동안 우리나라 에너지 문제에 있어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반핵운동과 에너지관련단체가 핵폐기장 입지선정 공론화에 참여할 중요한 명분이므로, 국가에너지위원회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에너지관련 시민단체가 공론화의 공정성 여부에 크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5.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를 위한 선결과제

1) 핵발전 비중에 대한 사회적 합의-원전비중 TF의 문제점과 제안

독일은 아켄트를 시작하기 이전 핵발전과 재처리 포기 의사를 분명히 밝혔기 때문에 핵폐기장 입지선정 과정에서 에너지 관련단체의 특별한 반발 없이 핵폐기장의 입지선정 공론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는 공격적인 핵발전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이러한 핵발전계획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핵폐기장의 설치가 시급한 상황에서 핵발전에 반대해 온 에너지 관련단체와 핵발전 비중에 대한 논의 없이 시작하는 공론화가 핵발전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고준위핵폐기물 입지선정이 공론화의 목적에 맞게 진행되기를 원한다면 정부는 핵발전에 대해 공론화를 진행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국가에너지위원회 갈등분과 원전적정비중TF처럼 찬핵과 반핵진영의 인사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핵발전비중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핵발전비중에 관한 공론화는 찬핵과 반핵진영이 참고인으로서 정보를 제공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반핵과 찬핵진영의 주장에 대해 국민들이 공정하게 정보를 획득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고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공론화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전문가들로 원전적정비중 TF가 꾸려지는 것이 핵발전을 둘러싼 오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국가에너지 갈등분과에서 진행하고 있는 원전적정비중 TF는 핵발전을 둘러싼 갈등의 한 당사자인 산업자원부가 실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시한도 9월까지라고 못박음으로써 정부가 국가에너지위원회를 통해 핵발전 비중에 대한 오랜 갈등을 봉합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려는 의지가 있는 지 공론화의 진정성이 의심된다.

표 3. 원전 적정비중 TF 명단(12인)

위원

소속

김발호

홍익대 전기공학과 교수

김진우

에경원 네트워크산업연구단 단장)

김시환

원자력학회 회장

한경구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박진섭

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

박영우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 원장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부 교수

이태호

한수원 정책실 처장

이만기

원자력연구소 정책부장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김종달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최태현

산자부 원자력산업팀장

2)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TF의 구성과 운영의 문제점과 제안

① 공론화 TF의 운영주체

현재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TF는 산자부가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산자부는 핵발전을 둘러싼 갈등의 한 주체로서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산자부가 주도하는 공론화가 공정하게 운영될 거라는 신뢰를 얻기 힘들다. 따라서 국가에너지위원회에서 사용후핵연료공론화 결과가 보다 신뢰성을 갖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인 산자부가 실무를 맡기 보다는 환경부나 민간간사위원이 운영 및 실무를 책임지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현재 공론화TF의 운영에 한하며 이후 공론화 TF의 결과물로 만들어질 본격적인 공론화기구는 현재 국가에너지위원회, 국회, 독립기관을 모두 염두에 두고 TF에서 기구 구성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② 공론화 TF의 구성과 운영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TF가 재처리 및 중간저장 방식 공론화 계획 및 입지선정 공론화기구의 안을 만들기 위한 TF인지 재처리 및 중간저장방식의 공론화를 담당하여 진행하는 조직인지를 먼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공론화 방안을 만들기 위한 조직이라면 현재 찬핵 대 반핵으로 구성된 TF 조직은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지며 재처리 및 중간저장방식 등의 안을 만들고 이의 공론화를 담당하는 기구라면 운영주체의 공정성이나 책임권한이 문제가 된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가 필요한 것은 핵발전을 둘러싼 갈등이 이해당사자의 합의로는 이뤄질 수 없다는 데서 출발함을 분명히 인식한다면 핵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설정하고 이의 해결에 공공의 참여를 독려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는 인사로 TF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론화란 본질적으로 이해당사자의 문제를 공공에게 개방하여 논의와 정보를 공개하고 이를 통해 갈등이 있는 두 당사자의 문제를 사회전체가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찾도록 하는 참여적 민주주의 절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6.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고준위핵폐기물을 둘러싼 다양한 공론화 방안이 거론되지만, 입장에 따라 무엇을 공론화하여야 할 것인가조차 다 다르다.

국가에너지위원회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실무위원회’를, 시민사회단체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문제 공론화를 위한 국회포럼’을 구성해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분명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두 곳에서 모두 공론화의 사례로 검토되고 있는 것은 고준위핵폐기물 입지선정 공론화이다.

우리나라는 1991년 ‘비핵화선언’에서 핵무기를 제조 ․ 보유 ․ 저장 ․ 배비 그리고 사용하지 않으며,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 및 핵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국제사회에 분명히 선언하였다. 그런데도 찬핵론자들은 끊임없이 공식 ․ 비공식적으로 핵재처리에 대한 의지를 숨기지 않았고 이러한 속내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를 통해 재처리를 국내외에 인정받으려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따라서 반핵운동은 입지선정 공론화에 앞서 재처리에 대한 정부의 계획과 입장을 투명하게 밝히도록 요구하여야 한다.

또한 국가에너지위원회는 원전적정비중 TF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TF를 분리하여 원전적정비중에 대해서는 몇몇 반핵활동가와 에너지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원전적정비중에 관한 논의를 올해 9월말까지 끝내려는 계획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수차 언급한 것처럼 찬핵과 반핵진영이 오랜 갈등을 겪어왔고 또한 화해하기 어려운 핵발전 문제를 단기간에 합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는 결국 정부의 원전정책을 반대해 온 에너지단체에게 의견을 수렴했다는 명분 쌓기용 포석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공론화가 필요한 것은 찬반을 둘러싼 분명한 입장차이로 오랜 갈등이 계속되어 온 경우, 갈등을 빚어 온 당사자 외에 그로 인한 유형 무형의 영향을 입을 사회전체에 갈등문제를 공개하고 해결점을 찾는 방법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원전 적정비중의 문제야말로 찬핵과 반핵진영의 입장과 의견을 시민 사회에 공개하고, 국민들이 핵발전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답을 찾도록 하는 것을 공론화의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

핵폐기물 공론화는 정부와 전문가에 독식되어왔던 핵발전문제를 찬핵, 반핵 그리고 지역주민과 같은 이해당사자 뿐 아니라 현재 세대와 미래세대의 지속가능한 환경에 대한 선택, 혜택과 피해가 양분되었던 지역간 형평성, 정부의 예산집행의 적절성 등이 모두 고려되어 선택되는 민주주의의 참여적 절차로 시작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전문가 뿐 아니라 반핵운동도 핵폐기물 문제에 있어 당사자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핵폐기물 공론화는 참여 민주적 절차이며 반핵운동은 이 중 관련된 과정에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을 뿐이고 공론화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시민사회진영 전체의 몫이다.

따라서 반핵단체가 제일 먼저 시작해야할 일은 핵폐기물 공론화의 문제가 반핵문제가 아니라 민주적 절차를 새로 만드는 시작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시민사회가 이에 적극참여 할 수 있도록 정보와 기회를 제공하는 데 주력하여야 한다.

표 4. 핵폐기물 공론화의 내용과 주요당사자 및 주관기구

과정

당사자

주관

공론화 기구 구성 및 제도 정비

정부(산자부,과기부), 반핵단체, 에너지전문가, 공론화 전문가

정부(환경부),

시민사회단체

원전적정비중

정부(산자부) 반핵단체, 에너지전문가

공론화 기구

재처리 여부

정부(산자부, 과기부), 반핵단체, 에너지전문가

공론화 기구

중간저장 방식

정부(산자부, 과기부) 에너지전문가

공론화 기구

입지선정 공론화

에너지 전문가, 지역주민

공론화 기구

또한 핵폐기물 문제에 있어 한 당사자인 산자부 주도의 공론화가 적절치 않음을 분명히 하고 공론화 기구가 구성될 때까지 핵발전문제에 있어서는 제3의 정부부처인 환경부가 국가에너지위원회 갈등분과의 실무를 맡도록 촉구하는 일이 필요하다.

물론 고준위핵폐기물 공론화 과정에서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이 필요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반핵단체가 재처리와 원전적정비중의 당사자이듯이 입지선정 과정에서는 지역주민이 당사자이고 주역임을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공론화에 참여하는 시민단체에 시민사회단체와 지역주민 모두를 대표할 것을 요구해 왔다. 이것은 결국 통일된 의견을 낼 수 없는 시민사회단체간 그리고 지역주민단체와 반핵단체가 서로를 불신하고 분열하도록 만들었다.

지금 반핵운동이 해야 할 일은 먼저, 참여민주적 제도로서 공론화가 갖는 의미를 분명히 하여 시민단체가 각자의 목표에 충실할 수 있도록 공론화과정에서 각자의 역할과 책임한계를 분명히 하는 일이며 핵폐기물문제에 사회전체가 참여하여 참여민주적 제도의 모범 사례를 만들 수 있도록 전체 시민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국가에너지시민포럼이 조직을 재정비하여 시민사회의 폭넓은 참여를 촉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단, 국가에너지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나 기존 에너지 관련 단체 뿐 아니라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가 우리나라의 참여민주적 제도를 만드는 일임을 감안한다면 시민사회의 폭넓은 참여와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공론화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는 제도적 틀을 완성하고, 행정관료와 전문가에 의해 정보와 행정결정과정이 독식되어왔던 과학기술 및 제반 문제에 대해 시민사회가 공유하고 참여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는 참여민주주의를 확대하여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는 결과적으로는 핵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일이지만 절차적으로는 참여 민주적 제도의 모범사례를 만드는 일이다. 때로는 결과보다 절차가 더 목표인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