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감이라 유감

뗏목에서 자리잡기

환경과 미래 62호,  2007년 겨울

 

뗏목에서 자리잡기

이 수 경(회 장)

기후변화가 현실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예년에 없던” 가뭄과 더위와 폭우를 예삿일로 겪어 넘겨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상이 평상이 된 세상이다.

우리나라도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기론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우리나라가 언제까지 “기후변화의 역사적 책임”에만 기대서, 해야 할 일을 미뤄두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도 기후변화 국가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기후변화, 기후재앙을 막기 위해서라면 안전성 때문에 국민들이 불안해하더라도 핵발전소를 더 많이 짓겠다고도 하고, 지금도 신재생에너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폐기물소각에너지를 늘리겠다고도 한다. 2004년 우리나라는 1달러를 벌기 위해 석유를 350g이나 써야했지만 2030년이 되면 다른 OECD 국가의 2004년 평균 수준에 도달해 우리도 200g만 쓰면 남들이 26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석유 200g만 써도 1달러를 벌 수 있다고 한다. 겨우 남보다 26년, 한 세대 밖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태양에너지 보급을 늘리자니 우리나라 도시는 아파트가 많아서 힘들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자니 중화학위주의 제조업이 다른 나라보다 많아 그도 힘들고,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자니 산업계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자신도 없고, 아무 것도 안 고치고 내주지 않자니 머리를 짜내 봐야 기후대책이란 게 이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도 “새로운 금융상품"이라는 탄소시장의 흐름에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올 해 탄소시장을 개장한다. 또한, 세계 10위의 이산화탄소 배출국가이면서도 개발도상국이라는 지위를 내세워 감축목표 설정은 최대한 미루고, CDM 사업은 세계 4위의 규모로 키워냈다. 우리나라 정부는 기후변화를 시장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거나 또 하나의 성장의 기회로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산업활동이 기대고 있는 체계인 시장이 공유재인 대기와 같은 환경을 다루기에 적합한 체계가 아니며, 공공자산인 대기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시장체계가 아닌 공동체로서의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류는 기후재앙에 맞닥뜨려 깨달았고 그 결과가 기후협약이다. 누가 더 많이 책임 질 것인지를 힘의 논리로 풀어서는 안되며, 책임없이 재앙만 나누어 가져서도 안된다는 공동체로서의 책임분담이 기후재앙을 늦출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공감하고 약속한 것이 기후협약인 것이다. 1992년 리우에서 기후협약이라는 뗏목을 마련해 기후재앙이라는 파고 앞에서 더 많이 자리를 잡은 자들이 자리를 좁혀, 덜 가진 자들도 뗏목에 같이 앉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하였다. 1997년, 시장메커니즘을 일부 도입하는 조건으로 뗏목 위의 선진국에게 자리를 좁히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교토의정서를 거쳐 지금(2007.12.3~2007. 12. 14) 발리에서는 제13차 유엔기후변화회의가 열리고 있다.

처음에는 기후변화의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버티다가 이제는 교토의정서가 대안이 아니라며 자리를 내주지 않는 미국도 문제지만, 뗏목에 늦게 올라탔다는 핑계만 내세우며 뗏목이 기우는 틈을 타 제 자리만 넓히려는 우리나라도 문제다. 기후협약은 서로 자리싸움으로 밀쳐대기만 한다면 맨 먼저 힘없는 자들이 파도에 휩쓸리겠지만 결국 뗏목도 뒤집힐 거라는 공동의 위기의식에서 시작되었다.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를 공동체로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1992년 리우회의 이후, 15년이 흐르는 동안 기후협약이 어떻게 왜 시작했는지는 잊혀지고 조문만 남아 제 욕심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번 회의가 끝나고 나면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발표를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 “탄소시장이라는 새로운 기회에서 경쟁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기후변화에 적극적 대책”을 세우겠다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국가전략이다.

교토의정서로 지구를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우리는 재앙을 늦출 수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기후협약을 통해 뗏목에서 떨어지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라는 것을 우리가 배울 수 있으면 그것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한다. 시장과 성장만이 절대가치가 돼 버린 한국에서 살아내는 게, 뗏목에서 떨어지는 이웃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같이 고난을 견디는 것보다 더 재앙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유감이라 유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끝없이 성장해야 사는 사회  (0) 2014.04.15
살기 무섭다  (0) 2014.04.15
나만 잘 하고 살 생각입니다  (0) 2014.04.11
월드컵 소원  (0) 2014.04.11
핵발전과 두려움  (0) 2014.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