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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원자력제국

환경과 공해 25호,  1994년

 

원 자 력 제 국

로버트 융크 지음 / 이필렬 옮김 / 도서출판 따님

이 수 경(사무국장)

핵폐기물 처분장 부지선정 문제로 연말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인기 탤런트인 이정길씨는 매일 저녁 스웨덴도 일본도 프랑스도 다 주민이 앞장서서 안전한 핵폐기물 처분장을 유치했는데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라고 충정 어린 목소리로 묻는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늦출 수가 없다."고 결의에 차서 말한다.

그러나 '핵 없는 사회를 위한 전국반핵운동본부'에서는 바로 이 광고가 허위라며 손해배상 청구를 준비하고 있다. 핵폐기장 선정 후보지의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라도 막아내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제 핵폐기장 선정문제는 강제적 핵폐기장 설치던가, 핵발전의 포기던가, 양자택일만 남은 정치적 결단에 그 해결고리가 쥐어져 있는 듯 싶다.

핵폐기장 부지선정 과정에도 나타나듯이 핵발전에 관한 문제는 기술의 문제라기 보다는 정치적 문제라는 것을 많은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책 <원자력 제국>이다.

이 책은 안전성이나 경제성 같은 고전적 핵논쟁과는 다른 관점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핵기술의 사회적·정치적 속성에 대한 해부이다. 물론 그 동안의 쟁점이던 핵발전의 안전성이나 경제성에서 벗어나 다른 각도에서도 바라보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핵발전이 안전하다거나 경제성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러나 입장에 따라서, 자동차 사고의 위험보다도 작은 핵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주장은, 드리마일이나 체르노빌 사고의 예를 들이밀며 잘못 계산되어진 안전성에 대한 평가와 파괴적인 사고의 질을 고려해야 한다는 위험성에 대한 주장과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또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싼 단가와 현실화되지 못한 기술적 문제점을 들이밀며 다른 대안은 없다는 경제성의 주장은, 발전단가가 조작되었을 뿐 아니라 투자와 재원이 부족했던 재생에너지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해야 한다는 주장과 끊임없이 맞서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결코 만나지 않을 것 같은 두 주장에는 결코 만날 수 없는 두 문화가 존재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부드러운 길'로 표현되는 다른 길에 대한 소개는 책에게 미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원자력 제국'의 안전을 담보해 내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만을 간략히 소개하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노동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완전히 제거해 내서 인간의 실수만 배제할 수 있다면, 수천 년간 사회제도가 안정되어 테러나 전쟁으로부터의 위험을 없앨 수만 있다면 - 또는 경찰주의와 비밀주의로 사회안정을 지켜 낼 수 있다면-, 원자력 발전이나 핵폐기물 저장소에 위협이 될 어떤 천재지변도 일어나지 않도록 수천년 혹은 수만년간 인간이 운이 좋을 수 있다면, 원자력발전은 안전하다.!!!

우리는 인간이 역사를 통해 한번도 실현한 적이 없는 경우를 가정하고, 핵사고라는 어마어마한 위협 대신에 확인되지도 않은 경제성을 위해 그 동안 인류의 역사를 통해 어렵게 얻어낸 많은 민주적 사회제도를 잃어야 한다는 것이다.

친핵론자들은 이렇게 우리를 위협한다.

"대안이 뭔가? 전기가 없는 생활, 제한 송전이 일상화되는 생활, 그것 말고 대안이 무엇인가?"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해 왔다.

"에너지의 효율성 증대. 그리고 재생가능 에너지." 그러나 이 책은 우리에게 새롭게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술적 대안들은 정치적 결단이 선행되거나 적어도 병행되어야 하므로.

이 책 <원자력 제국>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에너지를 얻기 위하여 인류가 피와 눈물로 일군 민주제도를 잃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안전성을 담보해 내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전기에너지를 지금처럼 낭비하면서 살기 위해서 오로지 방법은 민주적 질서를 포기하는 길밖에 없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정말 우리는 인류역사의 가장 빛나는 업적인 자유를 헌납할 만큼 풍요로운 전기를 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