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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대단한 것

환경과 공해 43호, 2002년 6월

 

대단한 것

이 수 경(환경과 공해연구회 사무처장)

결혼하기 전에는 속상하면 늘 집에 가고 싶었다. 미안하지만 엄마 때문은 아니었고,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사주셨던 안데르센 동화 전집 때문이었다. 그 책이 생기던 때부터 집을 떠나기까지, 말만한 어른이 되어서까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안데르센 동화를 읽는 것이 내 유일한 위로였다. 그걸 읽다 주인공의 비극을 핑계 삼아 울다보면 어느새 잠이 들고 그 잠에서 깨어나서 읽던 꼬마 한스의 이야기는 얼마나 통쾌하던지. 그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던 이야기는 [미운 오리 새끼]와 [대단한 것]이었는데 전자야 잘 알려진 얘기지만 후자를 읽었다는 사람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는 여기저기 대물림하다 그 행방이 조금 복잡해진 그 책을 다시 들춰보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그 얘기를 써 먹어야겠다.

한 마을에 네 형제가 살았는데, 아버지의 유언이 세상에서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착한 형제들은 큰형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벽돌을 굽는 사람, 둘째는 그 벽돌로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집을 짓는 사람, 셋째는 그 집들로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도시를 건설하는 사람, 그리고 가장 영리했던 막내는 곰곰이 생각해 본 후에 비평가가 되었다는 얘기다.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그 집 형제는 아래로 갈수록 영리하다면서 막내를 제일 칭송을 했더란다. 그런데 이 훌륭한 형제도 죽어서 결국 베드로가 지키는 천국의 문 앞에 서게 되었다.

베드로 왈 "빈 손으로는 이 문을 지날 수 없으니 너희가 세상에서 가져온 것을 보여 보아라." 당연히 큰 형은 벽돌을 들고 천국의 문을 무사 통과하였고, 둘째는 설계도를 들고. 셋째는 도시계획서를 들고 모두 통과하였다. 드디어 막내 차례가 되었는데, 막내의 손에는 아무 것도 들려 있지 않을 수밖에. 아무리 자기가 한 일의 중요성을 설명해도 고집 센 베드로님은 귀 한 번 열어 주지 않고 현물을 보여주기 전에는 결코 이 문을 지날 수 없다고만 할뿐이었다. 그래도 시끄러운 막내가 귀찮아졌는지 드디어 베드로님은 천국의 문을 쾅 닫으면서 그 앞에서 네가 보일 물건이 하나라도 있는지 잘 생각해 보라신다. 답답할 밖에.

그렇게 얼마나 쭈그리고 앉았을까. 더할 수 없이 행색이 초라한 할머니가 천국의 문 앞에서 처량한 낯빛을 한, 막내 옆에 줄을 섰다. 이런 어울리지 않는 동행이라니. 막내는 짜증이 돋았지만 심심해서 물어본다. "할멈은 여기 웬 일이우?"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거지 노파였던 나는, 목숨만은 길게 타고난 덕에 남들은 일생에 한번도 못 볼만한 큰 해일을 두 번이나 보았지요. 그 두 번째 해일이 날 이리로 데려온 거라우."

자식도 돈도 없었던 노파는 이제 세상에서 살 힘도 없이 도시에서 거적때기를 집 삼아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벽돌공이 할머니를 불쌍히 여겨 깨진 벽돌을 주었고 할머니는 바닷가에 깨진 벽돌로 오두막을 지었다는 얘기. 그런데 아주 추운 어느 날,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즐겁게 놀고 있고 할머니는 오두막에서 사람들의 즐거운 모양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고. 그건 할머니가 어려서 본 해일 때의 하늘의 모양이었고 다급해진 할머니는 그 오두막에 불을 놓아 사람들이 할머니를 구하러 오게 했다고. 그래서 할머니는 여기 와 있지만 사람들은 아직 세상에 남게 된 거라는 얘기. 그런데 할머니가 얘기하는 동안 할머니 손에 꼭 쥐어 있던 불에 탄 지푸라기가 황금 지푸라기로 변했고 비평가에게는 한 번도 낯을 펴지 않던 베드로님은 천국의 문을 열고 할머니를 웃는 낯으로 융숭히 모셨더란다.

그 중 백미. 천국으로 들어가던 할머니는 다른 손에 쥐고 있던 깨진 벽돌 한 장을 비평가에게 주면서 "이건 당신의 형님이 내게 주신 은혜로운 물건이라우. 이 대단한 걸 당신께 드리리다." 그래서 막내는 형제 중 가장 어리석다며 늘 비웃던 큰형의 깨진 벽돌로 천국의 문으로 들어갔다나 어쨌다나.

책 뒤에는 비평가에 데인 안데르센의 악의적인 우화라고도 하지만, 그래도 어린 내게 다시 읽고 읽어도 가장 아름다운 얘기였던 걸 보면 그건 정말 대단한 동화였음에 틀림없다고 나는 아직도 생각한다. 그런데 한참이나 잊고 지냈던 동화가 요즘 자꾸 다시 생각난다.

환공연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지난 활동을 되돌아보는 것이 가장 먼저 시작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지난 총회 보고서를 보다가 좀 싱거워졌다. 계획만 있는 창립총회를 빼고는 늘 판에 박은 듯이 반복되는 반성. 회원의 참여가 적었고, 장기적이고 자발적인 계획에 따른 사업의 수행이 매우 부진했고, 협동적인 과제를 통한 회원간의 유대가 없었다. 따라서 환공연의 정체성 및 방향에 대한 정립이 시급하다. 운운… 이런! 십년 전에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니!! 그럼 이 고민의 정체는 벽돌을 굽기 싫은 다시 말해서 손에 흙 묻히기 싫은 게으른 막내가 생각해 낸 비평의 일종은 아닐까?

환공연이 또 새로운 활로를 찾는 일은 환경운동의 전체를 돌아보는 일이다. 환경운동이 현재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그 속에서 환공연은 어떤 몫의 역할을 담당해왔으며 앞으로는 어떤 몫을 담당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다른 단체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그런데 이게 참 힘든 일이다. 뒤에서 친한 사람끼리 모여서, 추측에 과장까지 덧붙여 흉보는 일이야 신나는 일이지만, 이걸 일 삼아 하자고 맘먹으면 열심히 벽돌을 굽고 있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는 일이어서는 안되게 해야한다는 최소한의 양식에서 오는 초조함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환공연이 새로운 활로를 찾는 일을 먼저 그 일을 해나가고 있는 모임에서 겸허히 듣기로 하였다. 그래서 마련한 것이 6월 21일의 "새로운 환경운동을 모색한다"는 환경단체와의 간담회다. 이걸 시작으로 우리는 깨진 벽돌도 쓸모있게 만드는 벽돌공이 되었으면 싶다. 우리가 우리를 돌아보는 일이 할머니를 구하러 바닷가로 달려나온 사람들을 해일에서 구하는 일이 못 된다면, 처음부터, 기초부터 벽돌을 구워나가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남이야 무얼 하든 또 남들이야 뭐라든, 우리가 우리를 돌아보는 일이 대단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기초부터 벽돌을 구워나가는 일을 하겠다는 오기가 우리에게 넘쳐 났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