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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이라 유감

오태양과 제시카 일병

환경과 미래 50호, 2004년 여름호

오태양과 제시카 일병

이 수 경(사무처장)

1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잠정적이지만 무죄가 선고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병역거부가 신성한 국민의 의무라면서 흥분하는 이들을 보면서 생각난 건, 가녀린 미국군인인 제시카 일병이 이라크인을 개줄에 묶어 끌고 다니는 사진이었다.

사진과는 달리 임신을 해서인지 살집이 오른 제시카가 턱을 쳐들고 그것은 미군의 조직된 점령행위의 일부였으며 자신은 그저 명령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인터뷰를 보면서 느꼈던 역겨움이 되살아났다. 이라크전에 참전하기 이전의 제시카가 그저 착한 시골 처녀였다거나 하는 보도를 접하면서도, 인간성이 전쟁에 의해 어떻게 왜곡되는지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당당한 제시카의 변론이 뻔뻔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건 전쟁에 참가한 누군가는 그런 사진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라던가, 전쟁에 참가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개인의 도덕적 자질에 대한 판단 때문이 아니었다. 국민 각자의 권리를 대행해주는 국가의 명령에 그저 아무런 판단없이 따르는 넘치는 충성심과, 국가의 명령이라면 어떤 행위도 반성할 필요가 없다는 듯한 태도 때문이었던 것 같다.

2

“태어나자마자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속하는 외부 환경이 기계적으로 강요하는 세계관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외부환경이 자신의 인격을 형성하도록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게 처신하기를 거부하면서, 의식적이고 비판적으로 자신의 독자적 세계관을 마련하고 자신의 정신노동에 연관되는 활동 영역을 선택해 세계사 창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인도하는 것이 바람직할까?(그람시․문화․인류학, 케이트 그리언 지음, 도서출판 길, p118)”라고 묻는 그람시는 모든 사람은 생각하며 원인과 결과를 따져본다는 면에서 지식인이 될 소양을 갖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사회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떠맡는 것은 아니라면서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외부환경이 강요하는 세계관을 판단하려는 사람만이 사회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3

오태양이라는 개인으로 대표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병역거부도 전쟁에 대해서는 제시카 일병과 같은 시각에서 출발한다. 전쟁이, 넓게는 병역이,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에는 거대하고 강고한 체제이며 거기에 귀속되는 한 개인의 의지나 양심을 지켜나갈 수 없다는 시각이다. 그래서 제시카는 순진하고 성실한 인격을 전쟁에 함몰당했으며, 오태양으로 대표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병역 대신 징역을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결국 국가의 명령에 대한 충성도에서 극과 극에 서있는 두 다른 사안이 공통으로 제기하는 것은 국가라는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강요하는 개인의 양심에 관한 문제이다.

군대나 전쟁 속에서 개인의 한계에 대해 똑 같이 인식하고 있는 오태양과 제시카가 전혀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국가와 개인이 충돌하는 양심의 문제에서 자존을 선택한 차이이다. 국가에 권리를 임대해 준 주권자로서, 권리의 유일한 창출자로서의 국민이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국가의 명령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차이에서 출발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온갖 비난에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내놓은 대안인 대체복무제 마저 국민의 4대의무를 부르짖는 이들에겐 변명일 뿐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빌미로 비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생기면 어떻게 할거냐든지-현재 우리나라에는 재력이나 권력을 등에 업은 비양심적 병역기피자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다가 군대가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든지-병역면제자에 대한 사회적 불이익이 상당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내놓은 대체복무제를 반대한다.

국가에 속한 국민이라면 그 명령이 개인의 가치관과 비추어 어떠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판단해서는 안되며, 국가의 명령은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그저 마땅히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들은, 국가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양심과 가치관을 접은 제시카 일병을 영웅으로 생각할까? 또한 개인의 의지와 양심에 반하는 국가의 명령을 거역하면서, 세계와 인류의 사회정치적 환경을 바꾸어 온 진보에 대해 뭐라고 생각할까?

4

선거로 국민의 권리를 위임받은 입법부뿐 아니라, 국민이 선거로 뽑은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었거나, 국가고시 등에 의해 선발된 행정부와 사법부도 역시 국민의 권리를 대행하는 대의기구이다. 이러한 대의기구들은 국민을 대신하여 병역과 같은 국민의 의무를 개인에게 부과하고 이를 어길 시에는 또 다른 대의기관인 사법부를 통해 개인에게 법률이 정한 제재를 가한다. 이것이 국가를 이루는 근간이며 국가의 존재 이유라는데 이의를 달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대의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나 의지와 충돌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주권자인 국민들은 대의민주주의에 직접민주주의를 접목시키기 위한 노력들을 계속해오고 있으며 이것이 시민운동이 태동한 이유이다.

요즘 들어 시민운동이 국가를 대행하여 시민을 교육시키고 동원하는 일이 주된 사업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일이 왕왕 벌어지지만, 그것은 시민운동이 국민운동(잘못 알려진 환경상식, 환경과 공해연구회, pp 21~23)으로 복속된 사례일 뿐 시민운동과는 무관하거나 오히려 배치된다. 시민운동은 대의민주제 하에서 침해되는 개인의 자유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이기 때문에 국가의 활동 일부를 부여받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집행하는 정책이 개인의 자유나 의지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국가의 제도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제도를 만들어나가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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