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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이라 유감

핵재앙과 인간의 실수

환경과 공해 35호, 1999년 11월

 

핵재앙과 인간의 실수

이 수 경(사무국장)

세기말의 위협이 실감나는 것은, 모모한 예언들이 아니고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지진, 지역분쟁 그리고 비행기나 핵발전소 등의 사고 소식 때문이다.

아직도 계속되는 지진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만과 터키에서 지진이 그토록 위협적일수 있었던 것은 고층화, 밀집화된 생활양식의 변화와 이러한 위험에 취약한 주거환경에 걸맞은 안전의식의 부재 때문이다. 또 얼마 전 사고원인이 조종과 관제의 실수로 밝혀진 KAL의 괌사고와 99년 들어 닷새간격으로 터진 일본과 한국의 핵사고도 현대기술을 운영하는데 아직 인간의 실수가 적절히 통제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현대적인 기술을 이용하는 사업일수록 대형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늘 제기되곤 하는 이러한 인간의 실수(혹은 실패)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정말 재앙을 막아내는 유일한 방법일까? 또 안전문화의 고양과 과학기술적으로 인간의 실수를 통제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

핵사고를 중심으로 인간의 실수가 재앙을 불러온 대표적인 사례로 드리마일과 체르노빌의 예를 들 수 있다.

1979년 3월 28일 드리마일섬 핵발전소 2호기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2호기가 모든 출력으로 가동되던 중 증기발생기에 물을 대는 급수펌프가 고장나고, 운전원의 잘못된 판단으로 핵연료를 식히는 냉각수가 없어져 그 결과로 핵연료가 녹으면서 격납용기 안에 많은 양의 방사성 물질이 쏟아져 나왔다.

이 사고로 인하여 20억불을 들여 설립한 핵발전소가 단 30초만에 못 쓰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오염된 방사능을 거두어 들이는 데만 10억불 이상이 들었고 지역주민 중에서 기형아와 암의 발생률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당시 사고를 조사한 백악관 직속의 12인 조사위원회는 당시 카터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핵발전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사고로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핵발전소가 사양길에 접어들게 되었다.1)

1986년 4월 26일 옛소련 체르노빌 핵발전소 4호기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체르노빌 핵발전소에서는 전력공급 중단시, 발전기를 공전시켜서 얼마동안 비상용 전력을 확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을 실시하고 있었다. 실험과정에서 운전원들은 주요한 안전상의 절차를 위반하였다. 체르노빌 핵발전소는 일단 핵발전소가 정지되면 제가동하는데 수십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핵발전로를 정지시키지 않고 실험을 반복할 목적으로 핵발전로에 이상이 있으면 핵발전로를 자동으로 정지시키는 비상정지계통을 끊어버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2)

실험을 시작한지 수초 후에 냉각수의 공급이 중단되면서 연료봉이 급속히 가열되어 1분도 되지 않아 3,000℃에 이르러 연료가 녹기 시작했다. 온도가 더욱 올라가면서 내부에 남아있던 물이 초고온의 수증기로 바뀌었고 곧 이어 폭발하였다.

이 폭발로 원자로가 있던 건물은 산산조각이 났고 노심은 벌어져 강력한 방사능이 방출되기 시작하여 25만의 인구를 가진 키에프시는 큰 혼란을 빚었다. 전문가들은 체르노빌을 둘러싼 곡창지대의 사방 9,100㎢는 오염된 표면의 흙을 제거하지 않는 한 수십 년간 심한 오염상태로 남아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피해정도는 논란이 구구하지만 피해규모를 대폭 줄여서 발표했다는 의심이 드는 소련 당국의 발표만 보더라도 이 사고로 약 5만명이 방사능에 과다노출 되었으며 약 20만명이 평생동안 방사선 질병과 관련된 정기검진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고로 입은 직접적 경제적 손실만도 32억달러에 달했으며 사후대책비를 포함하면 100억달러가 넘을 것이다. 한편 소련의 참사를 통해 유럽각국은 최고 100배이상의 방사능이 빗물에서 검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토양에까지 잔류하여 농작물에도 큰 피해를 주었다.1) 체르노빌사고는 핵발전소의 위험이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고 이를 계기로 핵발전소에 대한 일반대중의 반대의사가 더욱 분명해져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에서 핵발전소의 신규건설이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동중인 핵발전소의 폐지가 시작되었다.

재앙이라고까지 불린 드리마일과 체르노빌의 핵사고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무엇이었을까?

핵추진론자들은 드리마일사고와 체르노빌사고는 역설적으로 핵발전이 안전하다는 것을 규명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체르노빌사고는 우리와는 방호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드리마일사고는 핵반대론자들이 우려하던 것과는 달리 노심용융까지는 가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것이다. 드리마일이나 체르노빌사고는 "있을 수도 없는 어처구니 없는 인간의 실수가 빚어낸 사고"였기 때문에 우리에게 부족한 안전의식을 강화하고 방호체계를 보완하면 핵발전이 안전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즉, 우리나라에서 대형사고가 터질때마다 되풀이해서 지적되곤 하는 안전의식의 부재에 따른 부실공사, 설계결함, 운영부실, 조작의 실수 등이 보완되기만 하면 핵발전은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 어느 나라보다 공무원의 부패가 적고 잦은 지진이나 해일피해로 안전에 대한 체계가 완벽하며 기술력이나 운영자의 능력이 탁월하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일본에서도 핵사고는 일어난다.

우리가 드리마일이나 체르노빌 그리고 최근들어 일본과 한국에서 발생한 핵사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아무리 방호체계를 강화해도, 인간의 부주의나 실수를 최소화하려해도 "있을 수 없는 사건"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제어할 수 없는·있을 수 없는 인간의 실수는 기술의 한 요소이기 때문에 기술의 선택에는 반드시 인간의 실수가 그 기술을 이용함으로써 야기시킬 피해가 고려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기술은 인간의 실수에 대한 완충 능력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농업은 농약, 비료, 물, 전기 등 대량의 자원을 사용해서 개량된 단일품종을 넓은 지역에서 키우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잠깐의 정전사고가 몇만 마리에 이르는 양계장의 닭을 물살시키고, 영국에서 광우병파동이 생기면 영국에서 소고기를 수입하는 나라뿐 아니라 단일한 품종, 단일한 시료를 사용하는 전세계 국가에 비상이 걸린다. 또 사용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농약의 유독성분이 대를 물려 가는 동안 우리몸에 남게 되는 것과 같이 인간의 실수가 보다 광역화·장기화하여 피해를 입힌다.

쓰레기처리는 원거리를 이동하여 밀집처리하는 방식의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유기질쓰레기의 퇴비화기술의 성공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는데, 이는 유기질쓰레기의 퇴비화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밀집·대용량처리 기술의 문제이다. 며칠만 쓰레기수거가 지연돼도 도시의 기능이 마비되었던 96년 군포시 사례에서 스스로 순환할 수 없는 생활양식과 고도의 전문적 처리를 요하는 기술이 맞물려 나타난 현대 재앙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

발전방식도 지역·자원분산적인 재생에너지보다는 집중적이고 대용량발전 가능한 핵발전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태양열발전 등 핵발전보다 먼저 그리고 보다 개발이 쉬운 에너지체계가 핵발전에 비해 더딘 발전을 보여준 것은 기술적인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현대기술의 발전방식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기술의 집적화·대용량화 방식은 인간의 실수가 배제되는 높은 운영기술을 요하고, 밀집화, 고층화된 생활양식의 변화는 외부의 작은 충격을 재앙으로 만든다. 즉, 현대기술과 생활양식은 점점 더 인간의 실수에 취약한 구조로 발전해온 것이다.

물론 현대의 기술이나 생활구조를 하루아침에 바꿀수 없기 때문에 실수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한 노력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영광 3호기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설계결함이나 운영상의 문제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 시급하다.

그러나 우리가 드리마일이나 체르노빌, 그리고 최근 들어 빈발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의 핵사고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있을 수 없는 사고"가 반드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기술을 선택하는데 반드시 고려하여야 할 점은 사고가 재앙이 되는 기술을 피해 가는 것이다. 인간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기술은 결국 인간의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1) {알기쉬운 공해추방상식}, 가톨릭정의평화연구소편, 성바오로출판사

2) {21세기를 향한 에너지 원자력}, 원자력환경관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