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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이라 유감

우리동네 리본 아줌마는 어디 갔지

환경과 공해 44호, 2002년 10월

 

우리동네 리본 아줌마는 어디 갔지 (영국 체류기)

이 수 경 (사무처장)

1.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어느 동네에나 미친 사람이 한 명씩은 꼭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엔 머리에 리본을 커다랗게 맨 아줌마가 있었는데 옷은 늘 같은걸 더덕더덕 껴입어도 머리통만큼 커다란 리본은 매일매일 다른 천으로 매곤 했었습니다. 간혹 애들이 놀리기도 했지만 리본 아줌마가 나타나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떠는 마루 한 귀퉁이에 그냥 걸터앉아 있으면 아줌마들이 찬밥도 주고 옥수수도 주고 그랬습니다. 리본 아줌마는 애들이 놀리면 가끔 애들한테 돌을 던지기도 했지만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동네에서 풍경처럼 우리와 같이 살았습니다. 또 리본 아줌마에게는 아줌마의 엄마인 할머니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아줌마를 놀리다 걸리면 본인은 물론 부모까지 무지하게 욕을 먹기 때문에, 사람들은 뒤에서는 할머니 흉을 보면서도 아줌마에게 함부로 대하진 못했습니다. 한 마을에 오래 살면서 정이 든 사람들은 어느 날 아줌마가 나타나지 않으면 별 일이라면서 할머니집 근처를 삐죽삐죽 들여다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리본 아줌마가 우리 어려선, 작은 동네마다 있었고 또 할머니 같은 가족도, 또 이웃도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어디에서도 미친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곳에 삽니다. 신문 사회면 귀퉁이에서 가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정신이상자일 가능성이 들먹여지거나 더 드물게 실제 사건의 가해자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는 더 이상 미친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죄를 짓지도 않은 그들을 죄인처럼 정신병원에 기도원에 그리고 골방에 가두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라지만 우리는 그들이 우리보다 더 위협적이라는 증거를 경험에서도 또 통계에서도 결코 찾아낼 수 없습니다.

물론 위협적이지 않은 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들 마음 한 귀퉁이엔 어려서 아이들과 같이 놀려대었던 미친 아줌마에 대한 기억이 철이 들면서 가책으로 남아 있기도 하고, 마을마다 물건이 없어지면 제일 먼저 그들을 의심하고 몰아댔던, 그래서 가끔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얼어죽은 채로 발견되었던 그들에 대한 죄책감이 늘 위협적으로 우리를 쫓아다니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천박한 인간인 것을 드러내게 만들고 마는, 우리 양심을 시험하는, 약한 이들을 아예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감춰놓고 사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있는 것을 눈에 띄지 않게 감춰버리는 세상입니다.

2. 여기엔 장애인이 많이 사나 봅니다. 상점에서 물건을 사다가 또 횡단보도에서 파란 신호를 기다리다가 어디서나 장애인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만나는 빈도만큼 서울에서도 나는 장애인이나 정신지체자를 만났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독 여기만 장애인이 많은 것은 아닐 테니까요.

그래서 인터넷을 좀 뒤져봤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2001년에 장애인실태 조사한 게 있더군요. 우리 나라의 장애인은 2000년 현재 인구 100명당 3.09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일본은 4.8명, 독일은 8.4명, 미국은 20.6명, 호주는 18.0명이라는데, 그건 나라마다 법정 장애인 범주 및 정의가 달라서라고 보고서에는 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뿐일까 나는 보고서를 읽으면서 내내 그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보고서에 쓰인 대로라도 우리는 길에서 30명을 만날 때마다 적어도 한 명의 장애인을 만났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눈에 띄지 않는 장애인을 감안하더라도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장애인만을 도시에서 만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 남의 나라에서, 횡단보도에 같이 서 있는 장애인을 흘긋 쳐다보면서 손잡고 같이 살아갈 수도 있었을, 그러나 없는 듯 잊고 지냈던 내 나라의 그들에게 내내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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