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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하는 게 시민운동이다

시민운동과 도덕성

환경과 미래 65호, 2008년 가을호

시민운동과 도덕성

이 수 경(회 장)

시민단체들이 수난입니다. 예상되었던 일이고, 유연성이 장점이자 약점인 시민단체에게 절차를 문제 삼아 걸고넘어지겠다면 걸려줄 밖에 도리가 없는 문제이긴 합니다. 내용이 잘 못된 게 아닌데 절차만을 똑 떼어내어 전체를 문제 삼겠다면 앞으로 절차를 보완하던지 절차를 고쳐나가는 운동을 벌이던지 할 일입니다.

그런데 정작 유감인 건 비판하는 쪽이건 방어하는 쪽이건 “도덕성이 생명인 시민단체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겁니다. 예전부터 번번이들 그러는데 정말 시민단체에게, 시민운동가에게 도덕성이 생명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소름이 쭉 끼치더군요.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아니라는 건 분명합니다. 시민운동가에게 도덕성이 생명이라면 나는 진작 죽은 목숨입니다.

도덕이라는 게 자신에게든 남에게든 무엇을 재는 잣대가 되는 순간, 그건 나를 가두는 틀이 되고, 마땅히 이러이러해야 하는 규격이 됩니다. 그 규격이 제도화된 것이 법이고 관습입니다. 평균적인 틀을 만들어 씌우니 애초의 취지와는 달리 그게 우리의 양심을 얽매고 신념을 조일 때도 있어, 그 규격에 대해 의문을 갖고 규격을 고치자는 게 제가 시민운동을 시작한 이유입니다. 그러니 제가 도덕적 일리도 없을뿐더러 도덕이라는 잣대로 내 신념이나 양심의 가치를 평가받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도덕이 규범이 되면 모순이 발생하고 그 모순이 때로는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벽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 규범이 없을 수 없으니 그 규범을 어겼다고 사회가 뭇매를 던지면 맞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매가 어긴 규범에 대해서가 아니거나 어긴 규범만큼이 아니라면 뭇매를 던지는 자들의 속셈은 따로 있는 게 아닐까요?

사람이 제 생각을 주장하는데 삶의 내력으로 정당성을 확보 받을 수도 받아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세상에 옳은 게 하나뿐이라면 도덕적인 사람들끼리야 매사에 척척 일치하겠지만 어디 그렇던가요? 다른 주장의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할 일도 많지만 틀린 것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점을 조율하는 것이 우리 사는 일에서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가끔은 세상에 옳은 길이 여럿이라 그 길끼리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이 될 때도 정면으로 맞부딪힐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더 중요한 건 살아 온 내력이 사회적 기준에 맞지 않는 자의 주장은 진위를 따져보기도 전에 정당성이 묵살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게 시민운동의 중요한 분야라는 점입니다. 누구의 말인가 보다 무슨 말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것, 그게 우리가 여기서 이런 일을 하면서 청춘을 보내 온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시민단체에서 회계절차의 잘못을 빌미로 사무실 서류에 총장개인수첩까지 압수당하고, 출국금지를 당한 한 강단 좋던 환경운동가가 억울한 눈물을 흘리는 뉴스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의심하듯이 횡령이 있었다면 그건 그 나름으로 처벌을 받으면 될 일입니다. 어디나 그런 일이 있고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가 있었다면 그 만큼 대가를 치르면 될 일입니다. 하나로 싸잡아 시민단체의 도덕성이니 뭐니 하면서 비판하는 일은 문제를 다잡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횡령은 그 자체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입니다. 일하자고 만난 사람끼리 일을 철저히 하지 못하는 것은 도덕성과는 상관없이 그 자체로 문제입니다. 일이 잘 못되면 일을 바로잡아야 다음에 제대로 일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도덕성이니 뭐니 하며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일을 제대로 하게하자는 태도도 아니며 도덕성을 면피로 삼는 것도 다음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틀을 다듬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일을 제대로 하자면 잘못이 절차 때문에 생긴 일인지 사람으로 인한 일인지 가려 다음의 잘못을 바로잡으면 될 일입니다. 또 그 과정에서 조직이든 개인이든 잘못만큼 대가를 치르면 될 일입니다. 일만 제대로 하자면 도덕까지 내 주장의 정당성에 활용할 시간도 이유도 없습니다.

같이 해온 동료들이 겪는 부당하거나 넘치는 핍박을 옆에서 지켜보는 건 참 가슴 아프고 또 조마조마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도덕성을 내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데 사용한다면, 바로 그 도덕성을 빌미로 내 주장을 억누르려는 자와 만나게 되는 게 세상의 이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경과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