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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하는 게 시민운동이다

끝나지 않는 생리대·달걀 불안…소비자가 무슨 죄

인터넷 한겨레  2017.11.23

불편 감수한 소비자 결단, 정부와 생산자는 손놓아
‘살충제 계란’ `유해 생리대' ‘조류독감’ 등 미봉책만

» 정부와 기업이 제 할 일을 게을리 하는 사이 소비자들만 불편을 무릅쓰고 환경과 건강을 위한 부담을 떠안고 있다. 사진은 피자매연대 회원이 만든 대안생리대. 류우종 기자

지난 3월 여성환경연대의 문제 제기로 시작된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해가 저물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처음에는 여성환경연대의 발표를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가 여론과 총리의 질책이 이어지자 마지못해 생리대 유해성 조사에 나섰다. 
 
식약처 조사는 2014년 이후 국내에서 생산되거나 수입된 666개 품목의 생리대와 팬티 라이너와 기저귀 10종을 대상으로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검출시험과 인체 위해성을 평가하는데, 전수조사결과는 내년 5월에나 나올 예정이다. 그런데도 식약처는 연구가 시작된 지 한 달 만인 지난 9월 28일 “국민이 사용하는 생리대 가운데 안전성 측면에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은 없다”며 “생리대를 하루 7.5개씩 월 7일 평생 써도 안전하다”고 중간결과를 발표해 식약처 조사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자초했다(식약처 “생리대, 하루 7.5개씩 평생 써도 안전” 시민들 “못 믿겠다”).

» 식약처가 생리대 안전성을 발표한 28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생리대 유해성 규탄 기자회견을 알고 생리대 안전과 여성건강을 위한 공동행동 출범식을 열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제품의 안전성을 관리 감독하는 정부부처를 신뢰할 수 없게 되면서 시민들은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안전하다더라는 해외 유기농 제품과 천 생리대가 품귀현상을 빚기도 하고 생소하던 생리컵 구매도 크게 늘었다. 그러나 유기농 생리대는 가격에서, 천 생리대와 생리컵은 편의성 면에서 소비자들이 지속해서 사용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생리대 유해성 논란에 연이어 살충제 계란 파동이 터졌다. 지난 8월 계란에서 살충제가 검출되면서 시작된 살충제 계란 파동은 생리대 파동에 이어 상품의 안전성을 관리하는 정부에 대한 믿음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더구나 친환경 농가에서 생산된 계란에서도 일반 농가와 마찬가지로 살충제가 검출되자 그간 정부가 인증한 친환경제품을 믿고 샀던 소비자들은 친환경인증제도뿐 아니라 유기농이나 친환경을 내세운 상품 전체에 대해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살충제 달걀’ 농장 모두 49곳…친환경 농가 31곳).
 

» 동물권 단체 `케어' 회원들이 9월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안전한 먹거리 문화와 소비자 권리 획득을 위한 시민단체 연대 기자회견을 열어 살충제 달걀을 이용한 가공식품들로 위협받는 먹거리 문화를 비판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도, 상품의 안전성을 관리 감독하는 정부도 믿을 수 없게 되자 소비자가 직접 상품의 안전성을 찾아 나섰다. 계란의 생산자를 직접 확인하고, 상품의 성분명을 확인해 유해성을 따지려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또 정부기관뿐 아니라 기업, 개인이 상품의 유해성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화장품 성분 분석 인기 애플리케이션(앱) ‘화해’는 500만 명이 다운로드 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상품을 살 때마다 소비자가 직접 성분명을 확인하는 것은 전문가에게조차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TV도 환경호르몬, 본 뒤엔 환기해야). 또 월 사용자가 100만 명에 육박하는 ‘화해’가 제공하는 정보가 정확하지 않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화해’가 유해한 성분을 안전하다고 표시하는 등 반쪽짜리 정보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화해’측도 일부 시인하고 이를 보완하겠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인기 화장품 분석 앱 ‘화해’, 유해성 정보 제공 ‘반쪽짜리’ 논란).

» 믿을 수 없는 일회용 생리대 대신 면 생리대를 직접 만들어 쓰는 시민이 늘고 있다. 친환경 면 생리대 만들기 강좌 모습. 목화송이협동조합 제공.

시판되는 상품의 유해성에 대한 불안 때문에 직접 화장품을 만들어 쓰거나 천 생리대를 사용하려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문화센터마다 천연 화장품이나 비누 등을 만드는 공예 강좌는 인기 강좌로 자리 잡은 지 오래고 생리대 파동 이후 천 생리대는 내년까지도 판매가 예약되어있어 천 생리대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만들거나 구한 화장품이나 천 생리대라고 안전한 것도 아니다. 천 생리대에 사용되는 천의 형광증백제 문제나 화장품 원료의 유해성 문제 등, 유해물질을 피하려는 개인적 수고와 노력을 무색게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이는 상품의 친환경성 인증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료의 친환경, 유기농 인증도 제대로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친환경상품을 취급하던 한살림을 통해 비교적 고가에 납품되던 계란에서 디디티(DDT)가 검출된 일은 소비자에게는 물론 유기농과 친환경상품을 생산하고 보급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실천하던 생산자와 한살림에 더욱 큰 충격이었다. 농장에서 살충제와 제초제는 물론 항생제도 쓰지 않았고, 검출된 디디티가 이미 1979년부터 판매가 금지된 농약이라는 점, 반감기가 최대 24년인 디디티가 토양에서 검출된 것을 고려해 원인은 오래전 과수원으로 쓰인 땅이 문제였을 거라는 짐작이다(판매 금지 DDT, 어떻게 친환경 달걀에서 발견됐을까).

»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달걀을 폐기 처분하고 있다. 오염된 땅에서 친환경적으로 생산한 달걀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나왔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결국 농장주는 평생 일궈왔다는 농장 문을 닫기로 결심했다. 환경이 오염된 곳에서 닭과 계란만 관리한다고 친환경 계란을 생산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번 사건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념을 갖고 유기농을 실천해왔던 양계농가에서 생산한 계란에서 디디티(DDT)가 검출된 일은 상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안전성만 관리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지속가능성이나 환경과 동떨어져 우리가 사용하는 상품의 안전성만 담보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년까지도 주문이 밀려 살 수 없다는 천 생리대 열풍이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더불어 시작된 일회용 생리대의 편리함을 포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생리대 유해성 논란”과 “살충제 계란 파동”을 계기로 상품의 안전성 문제와 더불어 토양오염이나 일회용품 폐기물 문제와 같은 환경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 고민을 해당 소비자인 여성이나 주부에게 부담 지우는 것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상품의 안전성 문제는 보건의 문제이기도 환경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부담과 책임을 누가 어떻게 얼마나 나눌 것이냐에 관한 정의의 문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야생조류에서 조류독감이 확인되자 21일 전남 순천만 습지가 폐쇄됐다. 공장식 축산 등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 할 시점이다. 연합뉴스

불편함을 감수하고 환경과 건강을 위해 천 생리대를 사용하는 소비자의 결단은 박수를 보낼만한 일이다. 하지만 적극적 실천에 나설 수 없는 수많은 소비자의 안전에 대한 대책은 개인이 아니라 정부와 생산자가 먼저 내놓아야 한다. 생리대 유해성 논란과 살충제 계란 파동은 정부와 생산자가 저지른 사고이기 때문이다.
 
생리대 유해성 논란처럼 문제가 터질 때마다 개인이 나서서 허겁지겁 해법을 찾고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는 일은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나 해마다 되풀이되는 조류독감처럼 근본적이고 거시적인 해결책에 대한 고민 없이 미봉책으로 사고가 되풀이되는 일도 그만두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처럼 피해자만 자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일도 이제는 정말 그만두어야 한다.

이수경/ 환경과 공해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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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끝나지 않는 생리대·달걀 불안…소비자가 무슨 죄|작성자 환경과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