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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하는 게 시민운동이다

탄핵사태로 본 시민사회의 총선운동

환경과 미래 49호, 2004년  봄호

 

탄핵사태로 본 시민사회의 총선운동

이 수 경(사무처장)

16대 국회가 다수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다시 전국에서 촛불이 밝혀지고 있다. 국민 다수의 표를 얻어 국민의 대표가 된 국회의원 다수의 표결이 국민 다수의 의견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부패한 정치권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국민들이,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권에 대해, 권리를 임대해 준 주권자로서의 적극적인 의사표명을 하고 나선 것이다.

16대 총선에 이어 17대 총선에서도 시민사회단체는 낙천낙선운동, 당선운동, 정책평가 등 유권자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정치권 등 일각에서는 낙천낙선운동 등 시민사회단체의 정치참여에 대해 줄곧 비판해 오고 있는데,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도마 위에 오르게 된 대의민주주의와 다수결의 한계를 중심으로 시민사회단체가 정치에 참여해야하는 당위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대의민주주의 하에서는 다수의 대표가 다수의 의견을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모순이다. 국민의 약 70%가, 대통령의 잘못 여부는 차치하고, 대통령의 잘못이 탄핵 사유가 되지 않거나 탄핵을 원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여론 조사를 통해 의견표명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의 약 70%의 찬성으로 대통령 탄핵은 가결되었다. 국민의 뜻과는 정 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가 국민 다수의 뜻과는 다른 의견을 수시로 내놓게 되는 이유를 먼저 산술적으로 살펴보자.

16대 총선의 투표율은 57.2%였고, 이 중 각 당에 대한 지지율은 한나라당 39%, 민주당 35.9%, 자민련 9.8%였다. 이 중 민주당이 실제 탄핵에 반대한 열린우리당으로 분화된 점을 감안한다면 16대 총선 당시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20.5%(현 두 당 의원 수 기준)로 대략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탄핵에 참가한 국회의원들이 반영하는 민의는 투표율(57.2%)과 세 당에 대한 국민 지지율의 합(69.3%), 그리고 가결에 찬성한 국회의원의 비례수(76%)를 가지고 계산해 보면(투표율*지지율*가결의원 비례수), 약 30.1%의 국민들이 16대 총선을 통해 뽑은 국회의원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셈이 된다. 즉, 국회의원들이 정직하고 자신을 뽑아 준 유권자의 뜻을 충실히 수행한다는 전제하에서도 대의 민주주의하에서는 다수의 대표가 다수의 의견을 거역하는 결과를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이 국회의원들이 대통령 탄핵과 같은 국가의 대사가 걸린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서 자신들의 행위를 소속 정당, 혹은 자신의 입장뿐 아니라 국민들의 여론을 통해서도 항상 비추어 보아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16대 국회는 국민의 의사나 이익보다는 정당과 후보 개인의 이익을 선택했고, 오늘 전국을 밝히고 있는 촛불은 국민들이 국회라는 대의기관을 통해서는 달성할 수 없었던 국민적 의사를 직접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투표율이 낮고, 16대 총선에서 더욱 심화된 지역주의 등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겹치게 된다면 국민의 대표가 국민의 의견을 대표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더욱이 우리나라 국회는 정당정치를 채택하고 있어 개별사안에 있어 국회의원은 국민의 여론보다는 당론에 입각한 판단을 하게 된다. 이것이 대통령 탄핵 뿐 아니라 이라크 파병 등에서 보듯이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에서 국민의 의사와는 다른 결정이 내려지는 까닭이다. 이에 더해 16대 국회처럼 도덕적으로 해이한 국회의원이 다수 구성되어 있는 대의기관에 의해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든 일이다.

이러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시민들의 자발적 촛불시위로 나타난 국민의사의 적극적 표명과 낙선, 당선운동 등 여러 가지로 분화되어 총선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이다. 시민사회단체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나 국가운영의 권리를 양도받은 행정부가 국민의 의사나 이익과 반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것을 감시하거나, 행정이나 입법활동에 직접 참여하여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활동을 펼쳐나가는 것을 하나의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국민의 대다수가 원하지 않는 새만금갯벌의 간척을 시민사회단체가 반대해 온 일, 국정감사에 참여하여 국회의 활동을 감시하고 평가해 온 일, 민관기구 등을 통하여 행정에 참여하여 활동해 온 일 등이 그러한 활동의 일부이다.

16대 총선부터 시작된 시민사회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은 국민의 대표가 될 국회의원의 자격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후보 개인에 대한 검증의 틀을 제시하였다. 물론, 낙천낙선운동이 정치혐오를 부추겨 투표율을 떨어뜨린다거나(16대 총선 결과 근거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정당정치하의 우리나라에서 개인 자격 검증이 바로 국회의 질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성공적인 16대 총선의 낙천낙선운동에도 불구하고 16대 국회는 역대 어느 국회보다 가장 타락한 국회라는 평가를 받았음을 감안한다면 일면 타당성이 있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낙천낙선운동은 오랜 군사정권하에서 수동적인 백성으로 남아있던 국민을 주권자로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로, 시민사회단체가 총선에 적극적인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다수의 대표가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모순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2000년 통계에 의하면 여성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50.8%로 남성 유권자보다 많다. 그러나 여성국회의원은 전체 국회의원 273명 중 5.9%인 16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는 여성은 물론, 장애인, 빈민계층 등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전체를 대표하는 기관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이 뽑은 대표는 경제적․사회적 위치에서 일부, 특히 권력이나 재력을 갖는 일부만을 대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러한 다수의 대표에 의한 결정이 일부 특권층의 이해만을 대변하거나, 다수의 작은 이해를 위해 소수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일도 왕왕 있어왔다. 다수의 국민이 불가피한 찬성의 입장을 밝힌 부안 핵폐기장 건설의 경우가 이러한 예이다. 국민 다수의 결정과는 별도로, 지역공동체의 이해가 걸린 문제에 있어서 국민의 대표기관은 정책의 정당성과 지역주민의 의견을 정책결정에 반영하여야 하며 이러한 소수의 권리를 정부기구가 존중하도록 하는 운동이 시민사회운동의 주요한 사업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시민사회단체는 다수의 이익뿐 아니라 소수의 권리도 다수의 권리와 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 입각하여 행정부나 입법부를 견제해왔다. 이것이 의원의 전체적인 자질을 묻는 낙천낙선 운동과 병행하여 나타난 각 부문의 후보 평가 작업이다.

시민사회의 각 부문운동에서는 16대 의원이나 17대 후보의 각 부문별 활동과 정책설문을 통해 평가작업을 수행하고 17대 국회에서 사회적 약자의 이해를 반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것이 이번 총선연대의 각 부문 낙천낙선운동, 그리고 초록국회만들기 네트워크(이하 초록국회)의 초록후보 협약운동과 같은 당선운동으로 실천되고 있다. 더욱이 각 부문의 가치를 실현시키는데 있어, 여성부문과는 달리 다수의 유권자를 갖지 못한 부문운동에서는 부문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17대 후보에 대한 당선 운동이 더욱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소수라도 적극적으로 부문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대표를 국회에 진출시켜 국회 내에서 각 부문의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환경과 공해연구회도 참여하고 있는 초록국회는 17대 국회에서 환경부문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유권자운동이다. 초록국회는 총선연대를 포함한 다른 유권자 운동과 연대하여 국민의 대표로서의 국회의원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하려는 노력과 함께, 17대 국회를 통하여 환경운동권이 이루고자 하는 환경정책을 명시하고, 이러한 노력을 함께 해나갈 후보를 추천하여 17대 국회에서 환경부문이 세운 정책목표를 실현하고자 한다.

시민사회운동은 대의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문제점에서 출발한다. 시민사회운동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시민이 직접 행정의 일부로서 참여하고 또한 시민이 직접 입법활동의 일부를 수행하도록 대의기관을 견제하고 보완하는 기구이다. 그러나 또한 현재의 입법, 행정은 물론 사법부와 같은 국민의 권리를 위임받은 대의기관을 감시하고 협력하여 대의 민주주의가 갖는 한계를 최소화하기 위한 운동도 병행하고 있으며 이것이 오늘 시민사회운동이 벌이고 있는 유권자 운동이다. 따라서 시민사회운동이 행정부를 견제하고 협력하여 정책을 수행하는 일 외에 입법부의 활동을 감시하고 참여하는 일로서 총선참여는 시민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