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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이라 유감

알 수 없으면 무섭다

환경과 공해연구회 소식지 2011년 3월호

알 수 없으면 무섭다

이수경(사무국장)

일본인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를 감동시키며, 아이티와 비교되던 일본 시민들이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다. 핵재앙은 유래 없는 지진도 쓰나미보다도 더 공포스러운 걸까?

일본의 침착한 대응을 한 목소리로 칭송하면서 아이티 사례를 반례로 드는 것은 참 불편했다. 아이티 국민이 그러고 나설 수밖에 없었던 건, 정부가 해줄 게 아무 것도 없을 거라는, 그래서 내가 나 자신을 챙길 수밖에 없다는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진과 쓰나미에도 침착했던 일본 국민이 그동안 비밀주의로 일관해왔던 핵산업과, 핵참사 앞에서도 반복되는 정부의 거짓말과 정보은닉에 공포심을 느끼는 건 그래서 당연하고 또 가슴 아픈 일이다.

인재와 안전성에 문제가 있었던 모델이기 때문이라는 변명은 언젠가 들어본 말 같지 않은가? 체르노빌 사고 때도,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을 포함한 서국 국가들은 체르노빌은 서구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낡은 모델이며,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체르노빌뿐이랴, 스리마일 사고를 포함해 크고 작은 핵사고의 원인 진단은 늘 한결 같았다. 있을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한 건 인재와 구조적 결함(우리는 이미 극복한)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건 정부와 핵사업계의 늘 한결같은 핑계다.

예상한대로 한국정부와 핵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모델은 일본과는 달리 안전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핵정책은 바꾸지 않겠다며 일본의 핵재앙이 벌어진지 하루도 안 돼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원전정책을 재검토하고 안전성에 대한 재점검에 나서는 가운데 한국은 안전점검이 끝나기도 전에, 일본의 핵재앙이 진화되기도 전에 결론부터 밝힌 것이다.

국민이 동요할까 봐, 불필요한 소동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쉬쉬 하는 사이 감춰진 정보는 공포를 키워낸다. 지진도 쓰나미도 무너뜨릴 수 없었던 일본 정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건 방사능 공포만이 아니라 정보를 감추고 불안만 잠재우려는 거짓말 때문이다. 국민이 동요한다는 핑계를 대며 먼저 불신하고 나선 쪽은 국민이 아니라 정부다. 안전만 강조한다고 신뢰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국민을 믿고 정보를 공개하고 정책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신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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