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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이라 유감

내안의 영웅주의

환경과 미래 68, 2009년 여름호

 

내안의 영웅주의

이 수 경(회 장)

5월 24일 토요일 아침,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멍하다 봇물처럼 터진 노무현 시대에 대한 기억들로 혼란스럽다. TV에 눈을 둔 채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로 잠을 통 이루지 못하더니 월요일엔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2002년 12월 19일, 16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그 날 나는 영국에 있었다. 아마, 한국에 있었어도 그를 뽑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선이 되지는 않겠지만 진보정당에 투표해 득표율을 높이는 것이 거대한 보수정당만이 판치는 이 나라에 진보의 싹을 심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날 투표하지도 않았을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승리에 가슴을 졸였다. 나는 엎치락뒤치락 하는 투표결과를 보면서 온 방안을 뺑뺑 돌아다니며 애타하다가 그의 승리에 온 동네가 떠나가라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질렀다. 대낮부터 술판을 벌여 놓고 어찌나 기뻐 떠들어댔는지 우리 옆집에 살던 이웃들이 들여다봤다. 나는 그들에게 한국의 새 대통령과 그를 뽑은 우리들에 대해 실컷 잘난 척하고 뻐겼다. 저는 찍지도 않았을 거면서.

2003년 3월, 참여정부는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였다. 나는 국익을 내세워 정당하지 않은 전쟁에 참여한 한국 정부의 판단을 수용하기 힘들었고 그 정부의 수장이 노무현이라서 화가 났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기대를 걸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불과 100일 남짓 만에 나는 그가 부끄러웠다.( 환경과 미래 46호, “이라크전 소고” 참고)

2004년 3월, 16대 국회는 16대 대통령을 탄핵했고, 나는 탄핵반대 촛불을 들었다. 국민의 70%가 반대한 탄핵을 국회의원 70%가 찬성해 통과시켰다는 대의제도의 모순을 참여를 통해 바로잡고 싶다는 생각이었을 뿐, 나는 그와 참여정부에 대해 이미 냉담해져 있었다. (환경과 미래 49호, “탄핵사태로 본 시민사회의 총선운동” 참고)

참여정부 기간 내내, 새만금 방조제, 천성산 터널,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분장으로 대표되는 환경문제마다 참여정부는 실망스러운 정책을 내놓았고 의견수렴과정은 조악했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의제가 지역균형‘개발’정책이 된 것처럼 개발과 신자유주의에 기댄 정책을 내놓는 참여정부에게 속은 건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한 줄기 희망을 걸고 ‘참여’하였던 민관위원회에서는 결국 나는 이용만 당했다고 느꼈다. 나는 참여정부가 참여를 요식행위로 만들어버린 것에 지쳤고, 노무현과 참여정부가 지긋지긋해졌다.

그의 사진만 보아도 이름만 들어도 목이 메는 지금도, 노무현 정부의 “참여”가 시민을 권력의 일부로 편입시킨 반쪽짜리 참여일 뿐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 그의 면모를 더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의 편에 설 생각도 여전히 없다.

단지 나는 참여정부가 기꺼이 권력의 일부를 포기한 것처럼 국민은 당연히 책임에 대한 경감을 내어주었어야 한다는 뒤늦은 자성으로 아프다. 정부가 내놓은 권력을 시장이 허겁지겁 흡수하는 동안 시민세력은 맥 놓고 제 중심을 잡아내지 못했다는 자책이 부끄럽다. ‘참여’를 깃대로 세우며 스스로 조정자임을 자청한 정부를 갈등의 ‘상대’로 오인했다는 사실이 미안하다. 더욱이 그가 나와 같은 비주류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우리 일마저 미뤄두고 더 열심히 싸우지 않았다는 반성이 어지럽다.

겨우 3개월 남짓, 내가 참여정부에 등을 돌리는 데 걸린 시간이다. 왜 그랬을까?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후 가장 가슴 아픈 건 내가 그를 응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열심히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정자를 자청한 정부, 직접 민주주의의 확대를 표방한 정부에서 정책의 혼선은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갈등의 조정은 오랜 기다림과 시간이 필요하고, 갈등 양 당사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조정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닌데, 왜 나는 그렇게 빨리 참여정부에 넌더리를 냈을까? 왜 나는 수용할 수 없는 정책에 대해 싸우기 보다는 참여정부와 선을 긋는 쪽을 택한 걸까?

깃발과 색으로 표현되는 정치적 단순성과 맹목성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과 거부감, 영웅 만들기에 대한 혐오가 내가 노무현을 이해하기도 전에 질리게 만들어 버린 주요 원인이었다. 노사모, 황우석을 통해 드러나는 영웅주의, ‘참여’를 말하면서도 중간과 기다림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든 흑백논리가 참여 정부의 이미지가 됐고 그 이미지는 참여정부가 추구하는 가치를 밀어냈다. 게다가, 소통을 말하는 정부정책에 참여하면서 참여가 요식행위로 전락했다는 위기감, 오랜 민주주의의 성취를 소수가 사유화한다는 절망감이 깊어졌다. 결국 나는 참여정부의 ‘참여’는 일부 비주류에게 주류로 진출하는 교두보로서만 기능하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허무는데 기여하지는 않는 ‘참여’라고 평가하였고, 참여정부 후반기에는 공식적으로 모든 민관위원회에 환경과공해연구회는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였다.(환경과 미래 60호, “반핵운동은 고준위핵폐기물 공론화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참고)

그러나 그의 서거를 계기로 깨닫게 된 건 그를 둘러싼 세력 뿐 아니라 내 속에서도 자라고 있던 영웅주의다. 겨우 석 달 만에 참여정부의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등을 돌린 나야말로 한 방에 역사의 물꼬를 바꿀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한 사람씩, 한 단계씩, 늦어져도 함께, 나는 그렇게 산다고, 살았다고 믿다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내 속에 키워왔던 영웅에 대한 기다림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놀란 마음은 애써 외면했던, 미뤄뒀던 숙제들을 깨우고 나는 그 어마어마한 게으름의 결과에 치어 결국 앓아눕고 말았다.

오래 앓은 후에 밖에 나서면 눈이 부시다. 세상은 어제보다 더 빛나고 휘청거리는 몸은 척추를 바로 세워야 넘어지지 않는다는 걸 가르쳐준다. 이제 몸을 다시 세우고, 떠난 사람이 남긴 화두를 곰곰이 들여다보려고 한다. 더 열심히 싸우지 못했던 과제들을 꺼내서 참여정부의 정책은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이제부터의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야겠다. 그것이 너무 일찍 등을 돌려 버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 오랜 사과와 화해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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