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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해법이다/기후변화, 정의가 해법이다

신고리 5·6호기, 전문가에 결정 맡길 수 없는 이유

인터넷 한겨레 2017.08.16

정책당국자와 전문가의 누적된 실패가 이번 공론화 불러
전문가 객관적이지 않고, 과학기술은 사안의 극히 일부분

» '신고리5, 6호기 공론화위원회' 후원으로 열린 첫 토론회 '사회적 수용성을 갖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가 1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 공론화를 둘러싸고 말이 참 많다. 청와대와 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는 건설중지 결정을 누가 내리는지를 두고 우왕좌왕이고, 야당은 공론화위의 활동이 법적인 근거가 없다며 문제 삼고 있다. 일부 지역주민과 관련 노조, 전문가들은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을 위한 공론화 자체를 반대하고, 반핵단체도 공론화위의 활동에 공정성이 담보될지를 회의하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한마디로 관련자 모두가 공론화란 코끼리를 두고 저마다 다른 다리를 만지면서 공론화에 대해 불신하고 있다. 

공론화를 하겠다고 나섰다는 자체로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와 입장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셈이니, 공론화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또한 공론화를 계기로 오히려 찬반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정부를 상대로 제 주장을 해대던 일들이 이제 국민을 상대로 제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니 목소리야 커질 것이라는 것쯤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갈등 당사자끼리는 정책의 조율이 불가능해 공론화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겠다는데, 공론화의 방법에 대한 차이를 두고 이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갈등을 공론의 장에 올려놓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 신고리 5ㆍ6호기 지역 주민, 원자력과 교수 등이 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위원회 활동 즉시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공론화위원회 활동중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7월 13일 노조의 반발로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중단을 결정하려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가 한때 무산되고, 신고리 인근 일부 지역주민들이 8월 8일 울산에서 공론화 반대 시위에 나섰다. 7월 5일 전국 60개 대학의 교수 417명은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 명의로 “신고리 5·6호기 공사의 영구 중지 여부 결정은 공론화라는 이름으로 시민에게 맡기지 말고 전문가나 국회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은 공론화를 반대하는 이유로 “비전문가이면서 책임도 질 수 없는 소수의 배심원단”이 결정한 에너지 정책은 실패할 것이라고 우려한다(“원자력 산업 말살? 자신들 밥그릇 지키기 아닌가”).

물론 공론화를 통해 결정된 정책이 실패할 가능성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시민뿐 아니라 전문가, 고위 정책당국자에 의한 에너지 정책도 실패할 가능성은 있다. 유감스럽게도 정책당국자와 전문가의 누적된 실패가 결국 공론화가 시작된 계기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공론화가 시작되면서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전력 예비율이 지난 정부와 이번 정부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지만, 분명한 것은 서로 다른 두 발표 모두 전문가와 정책당국자가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이 종종 이런 정책실패를 마주하게 되는 이유는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이 스스로에게 갖는 기대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전문가는 객관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정책 결정에서 전문가는 중립적이지 않다. 전문가야말로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에 정책 결정에서 공정하기 힘들다. 김종훈, 윤종오(울산 북구) 의원은 12일 성명을 내어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지난 5년간 미래창조과학부 원자력연구개발비와 한수원 등 원전 사업자가 발주한 연구용역사업을 공동 분석했다”면서 “그 결과 6월 1일 성명에 참여한 230명의 원자력계 대학교수 중 연구개발 지원 등에서 이름이 확인된 것만 22개 대학 94명에 이르렀고, 금액으로는 978억원에 달한다”라고 밝혔다("탈핵 반대 성명 일부 교수들, 수십억 원씩 한수원 연구용역"). 일반 시민과 전문가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전문가는 객관적인 중립자가 아니라 이해당사자다. 

전문가가 모인다고 더 전문적인 것도 아니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전문가들이 정책을 수립한다고 하여도 혹은 전문가들이 자신의 이해를 뛰어넘어 오로지 공공의 이익만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수립하여도 여전히 정책실패가 일어난다. 정책전문가들이 정책을 수립할 때 고려해야 하는 것은 과학 기술적 사실만이 아니다. 비용의 문제, 사회적 수용성의 문제, 미래의 수요와 시장을 예측해야 하는 문제, 기술의 발달, 사회적 요구의 변화와 같은 수많은 문제를 고려해 정치적 타협을 통해 정책을 수립한다. 이런 타협을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서 하건 각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시민이 하건 정책실패는 일어날 수 있다.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의 주장과는 달리 정책을 결정하는데 과학기술은 아주 일부의 요소일 수밖에 없고 제 분야 외에선 전문가도 전문가가 아니긴 매한가지다.

결국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는 문제에서 누가 결정권을 갖던지 정책실패가 일어날 가능성은 존재한다. 공론화는 이렇게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고 결정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에 대해, 정책을 수행하는데 드는 비용을 지불하고 정책실패로 인한 잠재적 피해대상인 시민이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갈등이 오래되고 심각할수록 전문가들을 포함한 첨예한 이해당사자의 의견수렴은 정책과정에 많이 반영되는 반면 일반 시민의 목소리는 정책과정에서 배제된다. 공론화는 바로 이렇게 그동안 첨예하게 대립해 왔던 전문가를 비롯한 이해당사자가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를 이루는 대다수를 대표하는 시민이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 '당신과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를 주제로 한 20차 마지막 촛불집회가 열린 3월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문화 공연을 즐기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우리 사회가 공론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자신감은 외국의 성공사례 때문이 아니라 지난 촛불 혁명 때문이다. 우리 시민사회는 충분한 정보만 제공된다면 정책에 관여된 정보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다룰만한 집단 지성을 갖추었다는 것을 촛불 혁명과 최근 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는 “황우석 사태”를 통해 증명해냈다.

이번 공론화는 ‘겨우’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에 관한 문제다. 이번 공론화를 통해 얻어야 할 가장 큰 목표는 어쩌면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대한 결론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이해 당사자 간의 극한 대립만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지체돼 온 중요한 국가적 의제를 공론화를 통해 해결해낼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기회이다. 신고리 5·6호기가 건설되지 않는다고 우리나라 전력수급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2082년 수명 신고리 5·6호기, 미래 세대에 물어봤나), 우리나라가 핵발전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이번 공론화는 고준위 핵폐기물처분을 어떻게 할지, 핵발전을 어떻게 수용할지와 같은 핵발전을 둘러싼 오랜 논쟁과 갈등을 공론화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는 시금석이다. 

그래서 공론화의 성패는 “공론”화에 달렸다. 공론화위가 결론을 내는 것에 대해 청와대와 공론화위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비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그런 우려는 사실 부질없는 걱정에 불과하다. 공론화위가 결론을 내든 국무회의가 결론을 내든 국회가 결론을 내든 간에, 공론화 과정에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그 결론은 그동안 민관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정책위의 결론이 그랬듯이 수용될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 동부지역 기독교여성청년회(YWCA)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14일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대인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고리원전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 예정 부지 앞에서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을 요구하는 바람개비 행진을 하고 있다. 울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그래서 공론화위는 직접 결론을 내리는 배심원제를 어떻게 운영할 지보다 국민을 대표하는 배심원들이 결론을 찾아가는 과정을 국민이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철저히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배심원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일반 국민에게 제공되고 토론회 등을 국민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공론화 기간 중 사회의 관심이 공론화 의제에 집중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론화의 성패를 좌우한다. 공론화 과정과 정보가 국민에게 공개되고 국민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지 않는다면 이번 공론화위의 결론을 국민과 갈등 당사자들이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시민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와 이해당사자가 제공하는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공론화를 통해 시민이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만이 아니라 공공의 장에서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결정하는 것이 공론화다. 찬핵이건 반핵이건 시민을 이해시키고 설득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전문가와 이해당사자의 역할이다. 

또한 공론화를 계기로 국가정책에 대한 정보의 공개와 의견수렴이 어느 수준에서 이뤄져야 하는지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정책정보의 공개를 요식행위로만 여겨 제대로 찾을 수 없는 곳에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자료를 올리고는 정보 공개의 의무를 다한 척하는 일이 이 정부에서 더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전문가만 이해할 수 있는 정보는 공개되어도 공개된 정보가 아니다. 

이수경/ 환경과 공해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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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고리 5·6호기, 전문가에 결정 맡길 수 없는 이유|작성자 환경과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