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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하는 게 시민운동이다

공공부문 노조 살려면 시민·지역과 손 잡아야

공공부문 노조 살려면 시민·지역과 손 잡아야

 

                                                                  한겨레 물바람숲, 2017. 04. 07
첫 촛불 공공부문 노조 민영화 반대…에너지·철도·의료 등 중요 문제인데도 시민 외면
밀양송전탑, 석탄발전소, 4대강 등 공익 위해 나선 적 없어…시민사회와 협력 절실

00548406601_20160111.JPG » 전기, 가스, 수돗물, 보건의료 등을 담당하는 공기업의 민영화가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일반시민의 관심은 높지 않은 것은 왜일까. 사진은 신당진 변전소가 위치한 충남 당진시 정미면 사관리 마을의 송전철탑 모습. 지역주민과 환경단체는 공공노조가 공익을 위해 손을 맞잡기를 원한다. 당진시

한 마음으로 염원하던 일을 이뤄낸 사람들이 대통령이 탄핵되자 촛불을 끄고 광장을 떠났다. 지난겨울 광장은 민원의 해방구였다. 저마다 비장하게 혹은 유쾌하게 의견을 드러내고 모은 광장의 성과는 그래서 탄핵 그 이상이다.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낸 직접민주주의의 현장이었던 광장엔 민주주의를 복원시키겠다는 공동의 목표 외에도 숱한 민원이 등장했다. 광장은 모두의 목소리를 모을 수 있어 좋기도 했지만 모두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어서 좋기도 했다. ‘세월호 진상규명’, ‘국정역사교과서 반대’, ‘위안부 합의 무효’처럼 모두의 민원인 된 사안이 있는 반면 촛불집회의 진의를 훼손한다는 우려의 대상이 된 민원도 있었다. 때론 어떤 민원은 누군가에겐 불편하기도 불쾌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사회의 숱한 묵은 과제가 광장의 빛 아래 드러났다.

147774183082_20161029.jpg »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주최로 열린 첫 촛불집회의 모습. 이 집회는 공공노조의 주도적 참여로 진행됐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촛불집회는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2016년 10월 29일,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집회에서 시작되었다. 5만 명이 참가했던 1차집회의 주된 참가자였던 공공노조는 ‘공공부문 민영화반대’ 등 뚜렷한 목표를 갖고 시작했지만 참가자가 백만 명을 넘어서면서 촛불집회는 스스로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 주최 측은 3차 이후부터는 촛불집회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목표를 세우지도 세울 수도 없었다.  

촛불집회의 주요 참가자였던 공공부문 노조의 최대 현안인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가 모두의 주장이 될 수 없었던 것은 결국 광장이 민영화 반대 주장에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전기누진세가 온 국민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것을 되돌아본다면 에너지, 가스, 철도, 의료와 같이 우리 생활에 필수적인 문제가 왜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공공부문 노조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환경문제와 특히 관계가 깊은 전력, 가스, 물과 관련된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부문의 민영화는 구제금융사태 이후 정부에게는 빼먹기 좋은 곶감과 같은 유혹이 되었다. 공기업의 적자와 방만 경영을 해소하겠다는 핑계로 공기업 매각을 통해 재정을 충당하려는 시도가 이번 정부에서만 있던 일도 아니다. 

05622331_P_0.JPG » 4대강 사업은 공기업 적자의 큰 원인이 됐다. 이 사업이 공공성을 크게 해쳤는데 이를 지적한 시민사회와 대조적으로 공공노조의 문제제기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녹조가 심해 보 수문을 연 함안보의 모습. 김봉규 기자

박근혜 정부에서는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난 공기업 부채를 해소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공기업을 상장하고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공기업 지분을 매각해서 경영투명성을 강화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경쟁을 통해 공공요금의 가격을 낮추고 공공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겠다”며 민영화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민영화가 통신비의 경우처럼 가격 인상만 불러올 거란 염려는 영국과 같이 먼저 민영화를 실행한 국가의 예를 보면 그저 기우는 아니다. 또 미세먼지대책을 위해 정부가 노후화된 석탄발전소의 오염방지 설비에 투자하겠다는 계획과 같이 공공부문이기에 가능했던 대책도 민영화 이후엔 불투명해진다.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전기 민영화 이후 겪어야 했던 대규모 정전사태와 같은 서비스 질의 저하, 소외계층, 소외지역에 대한 공공서비스 제공의 제한 등 에너지기업의 민영화로 걱정해야할 일은 수없이 많다. 

01057949_R_0.JPG » 미세먼지의 주범인 낡은 석탄화력발전소 의 폐쇄와 배출규제 강화 같은 공공 대책은 민영화 이후에는 힘들어진다. 한겨레 자료 사진

공공부문 민영화든 선진화(이명박 정부)든 정상화(박근혜 정부)든 이러한 변화가 국민 모두의 생활에 당장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정부를 바꾸어가며 제도를 조금씩 뜯어 고치면서 진행되고 있는 민영화에 대해 국민들이 그토록 무심하고 냉담한 까닭은 무엇일까? 공공부문 노조가 10여 년 동안 끊임없이 공공부문 민영화를 반대하고 있는데도 다른 시민사회의 연대가 뜨겁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정부는 경영투명성 강화나 재무구조개선 등을 구실로 민영화하겠다고 하지만 공공부문의 재정악화가 정부가 강제로 떠넘긴 4대강사업이나 해외자원개발과 같은 정책 실패, 공공요금의 통제나 공공서비스의 확충과 같은 공공서비스의 특징, 낙하산 인사와 같은 방만 경영 때문이라는 점을 국민들이 모르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공공노조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국민의 힘이 모이지 않는 것은 현재의 공공부문이 본래의 의무인 공공성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해 흔쾌하게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공기업이 성과급 잔치를 벌였더라 하는 뉴스는 제외하고라도 하루가 멀다 하고 핵발전소 사고 은폐 소식이 들리고 결국 터야 할 4대강 건설에 앞장선 공기업의 사업은 국민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기보다는 공기업과 정권의 이익 실현을 위해 존재해 온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137454674051_20130724.JPG »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 주민들이 2013년 7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비를 맞으며 집회를 하고 있다. 공공노조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었나. 김경호 기자

유감스럽게도 공기업 공공성에 대한 의구심이 단지 경영진 때문만은 아니다. 밀양송전탑, 석탄발전소, 4대강 건설로 인한 주민 피해에서 공공부문 노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사례는 찾기 힘들다. 2013년, 한전이 밀양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면서 7·80대의 밀양주민들을 폭력으로 밀어붙인 것에 대해 항의하는 녹색당의 논평은, 공공부문 노조의 공공성 주장을 허망하게 만든다(전국전력노조는 한전의 밀양송전탑 공사강행에 대한 입장 밝혀야!). 일반시민들은 공공부문 노조가 민영화 반대를 외칠 때만 공공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생각한다.

이렇다 보니 환경단체나 발전소 인근 주민의 입장에서는 발전소의 안전성 문제, 정보의 공개문제에서 경영진과 별 다를 것 없는 입장을 보이는 노조의 공공성 주장이 핑계처럼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한때 환경단체에서 정부보다 먼저 전기부문의 민영화를 주장했던 적도 있고 여전히 부문에 따라서는 경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00555088001_20160409.JPG » 지난해 원전 주변 해수를 담수화해 공급하는 방안이 지역사회에서 큰 환경논란을 일으켰다. 담수반대대책협의회 이진섭 공동대표가 부산 기장군 고리 핵발전소 옆 바다에서 생수병에 물을 담고 있다. 이 대표는 “부산시와 상수도사업본부가 추진하는 해수담수 공급 계획은 마치 핵발전소 옆의 바닷물을 떠다가 기장 주민들에게 먹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오승훈 기자

공기업이 정권을 위해 국가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사업을 벌이느라 훼손한 공공성 때문에 빚 폭탄을 안게 된 국민들에게 공기업 민영화 반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민영화로 인한 공공요금 인상이나 공공서비스의 축소와 같은 기존의 주장으로는 부족하다. 공기업이 정권의 들러리를 서느라 발생했던 정책실패와 방만 경영을 극복하기 위한 공공성과 투명성 강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 정부관련 부처나 경영진은 물론 공공부문 민영화에 반대해온 노조도 답을 내놓아야 한다.

물론 공공노조가 공공정책의 추진 및 집행에서 배제되어왔다는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또한 공공노조가 꾸준히 공공정책 참여를 주장해왔다는 점도 알고 있다. 하지만 공기업 경영진이나 정부는 물론 공공노조조차도 공공부문의 공공성 확대를 위한 시민사회의 협력 요청에 매우 소극적이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공공부문이 민영화된다고 개혁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틀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공공부문의 목표가 수익성일 수는 없다. 공기업의 목표가 물, 전기, 가스와 같은 공적 자원을 더욱 지속가능하고 공평하게 나누는 공공성에 있다면 지속가능하고 균형적인 공공부문 개혁은 필수적이다. 광장이 공공부문 노조의 민영화 반대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은 정부의 민영화도 설득력이 없지만 공공부문 노조가 주장하는 공기업의 공공성도 설득력이 없기는 매한가지였기 때문은 아닐까?

따라서 공공부문 노조는 정부보다 먼저 공공부문의 개혁방안을 시민사회와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역주민, 시민사회와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온 한국전력과 같은 에너지공기업의 개혁 없이 공공성을 강변할 수는 없다. 하루도 맘을 놓을 수 없는 핵발전, 우리나라의 공기질을 세계최악으로 밀어 넣은 석탄발전, 주민건강과 재산권을 위협하는 송전선 등 현재의 파괴적인 에너지구조를 지속가능하고 공공적으로 바꾸는데 노조가 시민사회, 지역주민과 힘을 합쳐야 한다.
 
냉각수 누출.jpg » 원전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에서 원전 내부의 정보가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되는지가 매우 중요하지만 이를 위한 공공노조의 노력은 매우 미흡하다. 사진은 2008년 고리 3호기 증기발생기-B 수실 배수배관의 배수밸브 용접부 누설부위 정비를 위한 원자로 수동제어정지 조사 보고서의 손상 누설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그러기 위해서 공기업노조는 먼저 시민사회와 지역주민이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해온 정보의 공개에 대해서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서 공공부문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안전성과 관련된 내부고발을 제도화하고 시민사회와 지역사회와 함께 공기업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부터 공공부문의 지속가능한 개혁이 시작될 수 있다. 공공부문의 개혁을 위해 공공노조가 경영진과 정부에게 요구해온 참여의 문을 노조가 먼저 시민사회와 지역주민에게 열고 국민과 함께 공공부문의 개혁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노조의 힘만으로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을 막을 수는 없다. 

민주주의의 회복을 염원하던 촛불이 광장을 떠났지만 아직도 촛불을 켜고 광장에 남은 사람들이 있다. 시민들과 나누어야할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문제는 촛불로 남았다. 먼저 광장에 촛불을 켠 공공부문 노조도 아직 촛불을 끌 수 없다. 지난겨울 촛불을 밝히기 위해서 옆 사람의 불을 빌어야 했던 것처럼 공공부문의 지속가능한 개혁을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공공부문노조가 서로 불을 빌려주어야 한다.

이수경/ 환경과 공해연구회장